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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3일 화요일

URL Shortener - 재수정 -

Permalink 처럼 Shortenlink라는 이름으로 Shorted URL이 블로그툴이나 기타 CMS에서 기본 제공되면 좋겠다. 굳이 goo.gl 같은 Shortener를 따로 쓰지 않게. (귀찮음)
예를 들어 텍스트큐브라면 "http://tc.it/XXXX" 같은 Shorted URL을 충분히 자체제공할 수 있지 않나?


--- 수정 ---

그래서 만들었음.

아래의 코드를  <body>바로 아래에 넣고,


<script type="text/javascript" defer="defer">
//<![CDATA[
var urlPool = new Array();
function  shortenURL(entry_id) {
  urlPool.push(entry_id);
}

function doShortenURL() {
  var len = urlPool.length;
  for (var i = 0; i < len; i++) {
    var entry_id = urlPool[i];
    window.googl_callback=function(response){
      if(response.error_message){
        alert('Error:' + response.error_message);
      }else{
       var short_url = response.short_url;
       var rep = document.getElementById('shorten_url_' + entry_id);
       rep.innerHTML = short_url;
       rep.href = short_url;
      }
    };
    var u='http://ebadac.textcube.com/' + entry_id; // <- 요부분 각자 블로그에 맞게.
    var s=document.createElement('script');
    s.src='http://ggl-shortener.appspot.com/?url=' + encodeURIComponent(u) + '&jsonp=googl_callback';
    void(document.body.appendChild(s));
  };
}
//]]>
</script>

그 다음, </body>의 바로 위에, 아래 코드를 붙여 넣고...

<script type="text/javascript">
//<![CDATA[
doShortenURL();
//]]>
</script>






다음 코드를 각 엔트리의 적절한 구역에 끼워넣으면 됨
<span class="shorten_url"> |
<script type="text/javascript">
//<![CDATA[
shortenURL([##_article_rep_id_##]); //<- 이거 블로그 도구마다 다를테니 알아서.. 텍스트큐브는 이렇다오.

//]]>
</script>
이 글의 단축URL[<a id="shorten_url_[##_article_rep_id_##]" href="#"> </a>]
</span>
내 경우에는 제목 밑에 대충 붙였음.

그러면 아래처럼 붙음.

아마도 tistory나 wordpress나 대충 비슷하게 될 거라고 생각함.(그런데 아마 wordpress에는 플러그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버그 있다면 알아서 잡으세요. 오랜만에 코드잡으니까 귀찮다능...


--- 재수정 했음 ---
IE8의 악명높은 KB927917 버그(?) 때문에 다시 수정했음. IE 안쓴지 너무 오래되어 이런 문제가 있는지 생각도 못했다능.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한겨레-광고 유감

한겨레에 들어가 신문기사를 읽다보면,
기사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호버광고들이 있다.

기사 옆도 아니고 기사를 가리는 광고라... 이건 방송에서 뉴스 중에 PIP로 화면 1/4쯤 CF 내보내는 것과 비슷할까?

커서키나 페이지 다운 등을 누르면 잠시 사라지지만, 사라졌다 싶어 기사 읽는 도중에 또다시 덮는다. 젠장.


경영은 중요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정말로 신문사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이런 것 뿐인가?

2010년 1월 29일 금요일

현실은 시궁창 (iPad 단상)

1. iPad가 출시되면 사기는 살 건데...

2. 뭐하는 기기냐고 와이프도 묻고 해서 대답은 PMP + ebook리더 + 게임기라고 답해줬음.

3. iPad는 TabletPC가 아님. Tablet은 맞지만.

4. iPod Touch를 쭈~욱 늘려놓은 거라고 생각하면 됨.

5. 즉 주머니버전 대신 가방버전.

6. 넷북을 업무용 서브노트북 쯤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iPad가지고 아무것도 못함. (오피스와 IE가 없으니까???)

7. 여전히 영화를 보려면 자막이랑 합쳐서 인코딩해야 할 듯. <- 귀찮음.

8. iTunes Store에 한국영화들이 올라올 수 있을까? <- 일단 지금은 현시창

9. ebook 보기는 좋을 듯 한데, 마땅한 ebook이 없음 <- 역시 불법다운...

10. iTunes Store에 한국 ebook이 올라올 날은 언제? <- 일단 울나라 출판사들이 ebook부터 좀 찍어줘야만... 역시 일단은 현시창

11. 게등위인지 뭔지에서 게임심의조건을 풀어주지 않는 한, 한국에서 iTunes Store의 게임 카테고리는 열리기 어려움 <- 다시 한번 현시창

12. PMP + eBook 리더 + 게임기라는 컨셉은 한국에서는 삼천포가 되려나...

13. 사야 하나? T_T

14. 미국 계정이 있으니까, 미국영화 사고, 미국 책 읽고, 미국 게임 하면 되지만... -_-a

15. 샀다가 와이프가 이게 뭐여!!! 라고 할 것 같음. 이래저래 현시창.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죄수의 딜레마 보론

서울비님의 교실에서 해본 Win-Win 게임이라는 포스팅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몇가지 생각이 뻗어나가는 것들이 있어서 보론 성격의 포스팅.

1) 인류애와 진화적으로 지속가능한 전략(ESS)
물론 엑셀로드 이후 이 게임이 특별히 새로운 것 없이도 자주 반복되는 실험이긴 하지만, 서울비님의 교실실험이 흥미롭고 유의미했던 지점은 이 죄수의 딜레마를 '인류애' 혹은 '양심'이라는 키워드로 타파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고찰이라고 본다. 교실과 학생... 이라는 특이점과 순수함이라는 성격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러한 접근법은, 이상적일 수는 있으나 진화적으로 지속가능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이 되기는 어렵다. 바로 '틈입'에 취약하기 때문. 역설적으로 '교육', '양심', '도덕', '인류애' 무엇이든간에 W카드를 내도록 하는(배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압력이 강한 집단일 수록, 극소수의 배신자에게는 '배신'의 보상이 더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2) 내쉬균형
우선, 서울비님의 점수 룰은 그대로 둔 채, 경제적 동기를 부여해보자.
이 게임의 참가자는 수회 연속(주최자가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으로 게임을 한 후, 각 팀이 획득한 점수만큼 주최측으로부터 사탕을 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당장 양쪽팀은 상호협력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득실과는 상관없이 나의 점수만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이 게임은 상호협력전략이라는 내쉬균형에 이르게 된다.
마치, 월드컵 조별예선전에서, 무승부만 하면 두 팀다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축구팀처럼 두 팀은 주최측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상호협력을 통해 자신의 보상을 극대화하는 한편, 상대로부터 불필요한 견제를 받지 않기를 원한다. 이런 경우 배신으로의 유혹은, 단 1번의 확실한 이득에 비해, 남은 기간동안 벌어질 혼선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서로 바람직하지 않은 전략이 된다. (이 게임에서 남은 경기 수는 주최자만 안다는 것을 주의)

3) 기간의 한정
그러나 이러한 내쉬균형은 단순히 게임 회수를 미리 한정지어 공지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10게임을 진행할 것임을 미리 공지한다면, 9게임간 상호 협력하여 27점씩을 획득한 상태에서 보복의 걱정없이 6점을 얻을 수 있다는 배신의 기회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물론 상대방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상호배신의 방아쇠는 좀 더 일찍 당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늘 보고 내일 안볼 관계가 아닌 한 이러한 기간한정 룰은 약간 비현실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집단내에서의 사회적 약속이 배신에 대한 억제책으로 작용할 수 있는 힌트라 하겠다.


4) 목표의 한정
그렇다면 게임의 룰을 바꿔서 10회 게임시 15점 이상을 획득한 팀에만 사탕을 일정갯수 준다면 어떻게 될까?
점수에 상관없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사탕갯수가 일정하다면, 양팀은 서로 15점 이상을 유지하는 선에서 상호협력이 이루어질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15점 이상의 추가점수를 얻기 위한 전략 중에 배신이라는 선택지는, 보상되는 사탕에 비해 사회관계속의 불편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점수에 따라 지급되는 사탕의 갯수가 다르다면 또다른 전략이 필요하긴 하겠다. 배신의 보상에 따른 추가이익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크다면 배신은 사회압력을 이겨낼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 될 수 있다.

어쨌거나 공동의 목표가 존재한다면 충분히 상호협력이 이루어지도록 사회적 압력이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배신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배신의 유혹이 너무 크도록 보상이 과도하기 때문은 아닐까?


5) 배신,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이제, 점수 룰을 바꿔보자.
W-W의 경우 : 각각 6점씩 부여함으로써 상호협력의 보상을 키운다.
M-M의 경우 : 상호배신의 페널티를 더 늘려서 각각 -6점씩 준다.
W-M의 경우 : 배신의 유혹을 줄이고자(?) 배신으로 얻는 이익을 1점만 주고, 배신당한 쪽의 페널티는 0점만 부여한다. (파격적이다!!)

확실히 서울비님의 최초실험보다 배신의 유혹을 덜 받도록 구조화시켰다. 사소한 이익을 얻기 위해 배신을 하기에는 그 리스크가 너무 크다. 아마도 이러한 점수 구조는 상호협력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유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수 구조조차, 반드시 상호협력을 보장하는 마법의 주문은 아니다.

서울비님의 학생들을 2명씩 짝지워 교실 토너먼트를 주최한다고 하자. 최종 우승자가 뽑힐 때까지 토너먼트를 진행하고, 최종 우승자에게는 사탕을, 나머지 탈락자들에게는 화장실 청소를 시키도록 하자.

이러한 전형적인 승자독식시스템에서는 배신은 유혹이 아니라 구조가 된다. 비록 마이너스 점수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상대방보다 1점이라도 높아야만 다음 토너먼트로 올라갈 수 있다면, 배신은 경쟁을 위한 가장 좋은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6) 다시 처음으로.
애초에 '점수'를 부여한다는 것은 점수에 따른 보상차이가 존재한다는 함의이다. 승자'독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승자와 패자사이에 '격차'가 존재하고, 그 '격차'가 보상의 절대량만큼이나 중요하다면 배신은 '격차'의 확보를 위해 중요한 도구가 된다.
토너먼트 형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가치관의 집단 속에서는 배신의 가능성은 상존하게 된다. 심지어, 상호협력하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이 강한 집단일 수록, 역설적으로 배신자가 성공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배신을 하지 못하도록 교육이나 도덕이나 양심이나 인류애를 강조할 수록, 외부로부터의 배신자의 틈입에 취약해진다.


'보상'과 '격차'는 현실속에서는 자본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동작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 앞에서 상호배신 대신 상호협력을 통한 공동이익의 증대를 목적으로 한다면,

1) 보상과 격차를 무효화하던가 (자본주의의 폐지)
2) 배신자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공적 복수'를 집행하던가 (국가의 규제, 개입)

그러나 단지 성선설과 비슷한 입장으로 상호협력 예찬론식의 접근이라면, 이 게임 자체에 숨어있는 구조적 모순 대신 배신자 개인의 양심문제로 치환되버려, 학생들로 하여금 근본적인 모순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도록 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우가 든다.

2009년 8월 4일 화요일

Entrapment Game

여기, 현금 100만원에 상당하는 매력적인 다이아몬드가 있다.

이 다이아몬드를 경매에 내놓고, 참가자들에게 입찰을 하도록 한다. 시작가격은 100원이며, 100원 단위로 순차입찰할 수 있고, 물론 최종적으로 단독입찰이 될 때까지 경매가 진행되며, 최고단독입찰자에게 다이아몬드가 낙찰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경매룰과 다를 게 없는데, Entrapment Game에서는 한가지 룰이 추가된다. 경매에 참여하는 모든 입찰자들은 자신의 최종 입찰가액을 반드시 주최측에 지불해야 한다. 즉, 내 최종 응찰액이 5000원이었다면, 경매가 끝난 후 반드시 주최측에 5000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경매에 참여하는 이들의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최선의 전략이 존재할 수 있을까?

최초 입찰자 A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나는 지금 이 경매에 최초로 입찰한다면, 100원의 예상손실로 100만원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이들이 응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반드시 나에게 낙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단계에서내가 잃을 손실은 겨우 100원뿐이다."

두번째 입찰자 B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내가 지금 이 경매에 입찰한다면, 200원의 예상손실로 100만원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이들이 응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반드시 나에게 낙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단계에서내가 잃을 손실은 겨우 200원뿐이다."

참가자들이 모두 상호경쟁자라면 이 경쟁은 더욱 강화된다. B의 생각을 더 들여다보자.
"게다가, 지금 내가 입찰하지 않는다면, A는 100원의 비용으로 100만원의 이익을 얻게 된다. 만약 내가 A보다 100원만 더 투자한다면, 100만원의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내가 더 높아지게 된다. 게다가 설령 A가 300원으로 재입찰하여 A가 낙찰받게 된다하더라도 최소한 A에게 200원의 추가손실을 강제시킬 수 있다."

이후, 계속적으로 C,D,E... 들의 생각도 마찬가지. 어찌되었건 경쟁자보다 100원만 더 투자하면 다른 경쟁자들에게는 손실을 강요하면서 혼자 모든 이익을 차지할 수 있다는 유혹은 매력적이면서 합리적으로 보이기때문이다.

이러한 경쟁은 계속 빠르게 진행되다가, 참가자가 2인이라면 50만원 근처에서, 그리고 참가자가 그 이상이라면 전체 입찰가 총액이 100만원의 합에 근접할 때 잠시 멈칫하게 된다. 즉 2인이 참여중이라면 한명이 499900원을 입찰했을 때, 또다른 한명이 50만원을 부르는 순간이다.

이 시점은 주최측이 경매참여자 전체와의 게임에서 승리를 확정짓는 순간이다. 이 다음 입찰부터 전체입찰총액은 경매상품의 가치를 넘어서게 되며, 경매참여자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경매참여자 집단전체의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인 결과가 되버린다. 만약 어떤 경매참가자가 이 게임의 원리를 깨닫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개인적 수준에서는 설령 999900원까지 가격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입찰가가 상품가를 초과하지 않는 한 낙찰을 받는 쪽이 더 이익이기 때문에 경매에 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미 기존에 입찰을 했었다면 경매포기는 그 시점에서의 손실액을 확정짓게 되므로 상당한 심리적 저항을 겪게 된다. (손실확정에 대한 공포는 주식투자에서 손절매시기를 놓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
게다가 입찰참가자가 많을 수록 이 순간은 더 빨리 도래하며, 예를 들어 입찰참가자가 141명 이상이라면 각자 겨우 1회씩의 입찰만으로도 주최측은 손익분기점을 넘게 된다. 최고 입찰자가 고작 14100원을 가벼운 마음으로 처음 비딩했을 뿐인데도.

두번째 특이점은 입찰가가 상품가에 근접하는 순간 발생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상품가를 넘어서는 입찰가는 없어야 한다. 합리적인 경매참가자라면 상품의 낙찰로 얻을 기회이익보다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Entrapment Game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법칙은 통하지 않는다. 만약 이 다이아몬드 경매에서 특정참가자 X가 100만원을 입찰했을 때, 999900원을 투자했으나 X때문에 낙찰을 받지 못한 이전 입찰자 Y로서는 999900원을 그대로 잃는 쪽보다는, 차라리 100원을 손해보더라도 1000100원에 다이아몬드를 낙찰받는 쪽이 더 이득이며 거기에 더하여 경쟁상대에게는 100만원의 손실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찰가는 상품가를 넘어서는 순간 잠깐 멈칫했다가도 손실확정에 대한 공포때문에 다시 상승하게 되며, 심지어 낙찰로 인한 이득보다 손실이 커진다 하더라도 경쟁상대에게 더 큰 손실을 강요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매는 계속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멈추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커지는 상태. 다른 경쟁자들이 감당을 못하여 모두 나가 떨어질 때야만 비로소 경매는 끝나게 된다. 그 결과 남은 건, 상처뿐인 승자와 완전히 거덜난 경쟁자-패자들 뿐.

이것은 치킨런의 머니게임버전이라 할 수 있으며, 포커의 베팅 레이즈와 유사하다.

설마, 실제로 이런 바보같은 일이 현실에서 존재하랴 의심되겠지만, 승자독식경쟁시장 메커니즘의 기본이다. 예를 들어 가격할인덤핑경쟁은 Entrapment Game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핵군비경쟁이라든가, 최다득표자 1인만 뽑는 소선거구제 선거전략이나,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의 연습생시스템도 Entrapment Game에 해당된다. 심지어 남녀사이의 연애과정에서의 밀고당기기 역시 이 게임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Entrapment Game에서 참가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일단, 게임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방법이 있다. 확실히 손해는 보지 않을 수 있으며, 만약 다른 참가자들간의 과열경쟁으로 인해 입찰가가 상품가를 넘어서면 모두가 손실을 입는 가운데 혼자서만 상대적인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게임 참가자가 적은 경우에는 입찰가가 상품가를 넘어서기 전에 다른 경쟁자들이 나가 떨어짐으로써 운좋은 승리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전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한가지 방법은, 참가자 모두가 단합을 하여, 최초 한명만 100원을 입찰 후, 다른 이들은 모두 입찰을 포기함으로써 100원에 낙찰받고 그 이익에 대해 모두가 나눠갖는 방법이 있겠다. 허나 이 방법 역시 배신으로 인한 독식에 대한 유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라고 하기에는 곤란하다.

Entrapment Game은 승자독식사회의 기본 모델이자 '보이지 않는 손' 운운의 자유주의 경제학의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가정에 대한 근본적인 급소찌르기라 하겠다.


승자독식사회 - 10점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권영경 외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2009년 7월 31일 금요일

트위터는 소통인가

3년간 지켜본 결과, 마이크로블로그와 sayclub 채팅 서비스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찾지 못하겠다.

 

누군가는 남이 듣거나 말거나 큰소리로 떠들고,

누군가는 열심히 또다른 누군가를 스토킹하고,

누군가는 인기스타가 되기 위해 팬관리에 정신없고,

누군가는 빠돌빠순이 되어 맞장구 쳐주느라 바쁘고,

누군가는 동네방네 스스로를 알리느라 여념이 없고,

누군가는 그 와중에 몰래 1:1 대화를 시도하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낚으려 고민하며,

누군가는 알면서도 스스로 낚여준다.

 

 

시장바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모두들 큰 소리로 떠들게 놓아둔다.

 

소통이라기보다는 단상의 유통. 유통은 관계를 만들고 흐름을 만들지만 그 자체로 가치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닭한마리가 아무리 시장을 돌고 돌아 5성 호텔의 10만원짜리 식사로 변한다 하더라도, 그 닭 한마리로 실제 배가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한명 뿐이다. 남은 것은 부가가치의 창출이라는 미명하에 부풀려진 거품뿐.

 

트위터류의 마이크로블로그를 대하는 삐딱한 시선.

 

마케팅이나 홍보도구로 마이크로블로그를 고민하겠지만, 어차피 그걸 사용하는 이들 모두 그런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 아닌가. 문자 그대로 기업 홍보부나 영업부에서 일한다는 뜻이 아니라, 트위터를 대하는 개인의 자세가 그렇다는 것.

 

하긴, PR이라는게 원래 그런거긴 하지.

 

여하튼, 가만히 보면, '마케터'에게 '마케팅'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2009년 7월 21일 화요일

Textyle 짧게보기

http://www.xpressengine.com/aboutTextyle

XE의 Textyle의 글쓰기 관련 동영상을 구경하다.

우선 드는 생각은, 이른바 포맷화된 글쓰기를 강제(?)하는 인터페이스를 채택했다는 점.

그런데 과연 편리할까 하는 의심. (마우스 조작이 너무 많다??)

북마클릿을 이용한 클리핑으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MovableType때 잘쓰던 기능이라,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 (갠적으로 MT빠.)

그러나 북마클릿을 단지 글감용 클리핑으로만 사용한다면, delicious나 기타 북마크 어플리케이션/서비스와의 충돌은 어쩔 것인가. 블로그에 글을 쓰려는 클리핑에는 Textyle북마클릿을, 글을 안쓸 때에는 delicious를? 물론 글감보관함에 담긴 컨텐트들을 아마도 별도의 리스트로 Textyle외부로 빼주는 기능이 있기는 할 것 같지만.

문단별 편집기능은 화려해보이지만 얼마나 유용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굳이 저렇게 안쓰고 주욱 이어 써도 되겠지. 반대로 문단별로 편집한다 해서 뭐에 써먹을 수 있을지는 아직 이해불가.

이게 만약 WYSIWYG의 단점을 벗어난 WYSIWYM의 구현이라면, 글쎄... 일단 앞으로 템플릿들이 추가될 거라 하니 좀더 지켜봐야겠음.

아마, 도서나 영화, 요리, 맛집, 교통, 여행 등의 템플릿이 추가되면 썩 괜찮을 것 같고, 문단별로 관리하겠다는 뜻은, 시맨틱 태깅을 깨지 않게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보이므로 차후 수순은, 이렇게 작성된 컨텐트들을 쉽게 추출해서 네이버나 기타 별도의 서비스에서의 검색이나 서비스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은 컨텐트의 비정형성때문에 어려웠었으니까.

그외에, 글감용 클리핑을 통해 대상 링크에 대한 가중치를 얻는다거나...

그러나 생각해보니 Textyle은 개인설치형. 위의 추측은 가입형으로 서비스되어야 좀 더 의미있잖아. 설마 eolin같은 허브를 두려는 건 아니겠지...

2009년 7월 10일 금요일

티맥스 윈도가 공공기관 납품을 목표로 한다면...

티맥스 윈도가 조달청 납품을 목표로 하는지, 기업시장 납품을 목표로 하는지, 혹은 개인사용자를 목표로 하는지 관심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 개인사용자 대상은 어렵지 싶다. 왜냐하면, 오리지널 MS Windows를 능가하는 다종다양한 디바이스 호환성이라든가, 하드코어한 퍼포먼스 튜닝까지 담보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큰 일이기에.

아마도, 티맥스의 속셈은, 규격화된 디바이스에 적절히 맞춤된 OS, 그리고 OA수준의 표준어플리케이션으로 공공기관 납품을 목표로 할 것 같다. 잘되면 기업의 일반 업무용 PC 시장도 넘보고.

어차피 이런 곳에서는 오피스와 인터넷만 잘돌아가면 용도의 90%는 커버될테니, 굳이 MS Windows와 성능경쟁을 할 필요는 없겠다.

그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보니, 아마도 운영체제와 어플리케이션 두가지를 동시에 출시하는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상당한 전략미스가 보인다.

1) 애매모호한 포지셔닝
MS Windows 위에서 돌아갈 수 있는 티맥스 OA 어플리케이션. MS 오피스를 돌릴 수 있는 티맥스 윈도.
얼핏보면 엄청난 호환성인 것 처럼 들리지만, 뒤집어 말하면, 바퀴를 두번 만든 셈. 유일한 장점인 가격요소를 제외하면 굳이 갈아타야할 이유가 없다. 대체재로 작동하길 기대하겠지만, 그저 오리지널의 카피(?)로 받아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MS가 출혈을 감소하고 기관/기업용 솔루션 비용을 대폭 낮춰 제안한다면, 티맥스 윈도는 그대로 시장에서 퇴출된다. 가격대를 MS의 2/3 수준으로 잡으면 성공을 자신한다던데, 그말은 MS가 30%정도만 할인해도 경쟁력이 없어진다는 뜻. 최소한 투자비용 회수의 측면에서도 MS쪽이 티맥스보다 여유로울 것은 자명하니 할인경쟁으로 들어간다면 상당한 시궁창싸움이 되겠다. 물론 티맥스쪽이 불리한.

2) 욕심이 과하여 성급했다.
예를 들어 오픈오피스라든가 하는 MS OA 어플리케이션의 대체재들이 현재에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무료인 것들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새로운 OA 어플리케이션 수트를 만든 이유는 나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러한 자신감이 시장에서 증명을 받았어야 했다. 즉 OS와의 동시출시보다도, 먼저 오피스프로그램을 시장에 내놓아보고, 사용자단의 개발능력 및 품질에 대해 시장에서의 반응을 확인했어야 한다.
물론 어플리케이션 개발과 OS개발이 같은 라인에서 이해될 성질은 아니지만, 최소한 시장에서의 인지도나 신뢰도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과욕으로 인해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3) OS가 먼저? 어플리케이션이 먼저?
아무래도 어플리케이션 개발이 OS개발보다는 쉬울 듯. 어플리케이션을 먼저 출시 하여 평가를 받고, 기관이나 기업에 납품 실적이 쌓인 상태에서 비슷한 성능의, 더 저렴한 OS라는 포지션을 잡는다면, OS에 대한 개발기간을 더 확보할 수 있었을 테고, 당연히 완성도도 더 높게 가져갈 수 있었을 터이다.
아마, 대개의 조달사업들이 H/W+OS+어플리케이션 일괄납품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OS 동시출시의 압박을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또 찾아보면 안그런 조달사업들도 분명히 있기에 좀 안이한 판단이라는 느낌.

개인적인 소감은...
그저 한국적 특수성에 반짝 기댄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어질 것 같아 씁쓸.
뭐, 경영진이야 손해 좀 보는 거겠고, 티맥스는 원래 시장에서 탄탄한 회사이니까 크게 지장은 안받을 수도 있겠지만...
월화수목금금금일하고, 맹장이 터지고, 이혼을 당한 실무진들의 노고는 누가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 심지어 티맥스 윈도가 성공한다 치더라도 말이지.

2009년 6월 29일 월요일

type cast

자주 둘러 보는 LangDev에 올라온 Type Cast에 대한 글타래.
솔직히 마법 운운은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가고...

cast란 단어는 고norse(스칸디나비아 혹은 독일북부)어인 kasta(r)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뜻은 던지다... 이긴 한데, 우리 말의 '던지다'에 포함되어 있는 '버려서 없애다' 의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1) 어떤 목적이나 결과를 위해 의지를 갖고 진행시키다. (cast a dice는 주사위눈을 얻기 위해 주사위를 던지는 행위)

이라 할 수 있다. 즉, 사냥을 하기 위해 돌을 '던지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뜻으로,

2) (결과를) 셈하다, 수를 읽다, 예측하다, 예언하다 (cast accounts)
3) (적절한 결과를 얻기 위해) 맞추다, 배치하다. 할당하다. (cast an actor for a movie)
4) (목적을 위해 결과를 틀에 맞추어) 주조하다. (cast metal into coins)
5) (목적을 위해 낡은 것을) 갈다, 버리다, 교환하다. (cast a horn in autumn)
6) (목적을 위한 의지를 갖고) 던지다, 주다, 향하다. (cast a spell, cast a glance...)

등이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type casting이라는 단어에서 사용된 cast의 뜻은, 직접적으로는 4번에 해당하는 용례일테고, 숨은 뜻으로 보자면 2번이나 5번과 좀 관련이 있겠다... 라고 생각.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기회의 땅

http://news.msn.co.kr/article/read.html?cate_code=1400&article_id=200906211054221004
(주의:애플 사파리나 구글 크롬에서 보면 악성사이트라고 경고뜸. MSN사이트라서 그런가?)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 시나리오인지 무척 궁금하다.

물론, 나는 입지전신화를 매우 경계하는 바인데, 마치 북한의 노동영웅같은 기제로 작동하여 체제의 구조적 모순에 눈돌리게 작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기사로만 보아도 몇몇 특징적인 부분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노숙이라면 거주가 일정치 않을텐데 어떻게 학교에 등록할 수 있었을까. 학비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었을까. 장학금인가. 공부환경이 열악할텐데도 어떻게 영재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돈이 개입되지 않은 영재성을 확인받을 수 있는 것인가. 추천입학 역시 기부금이나 학교권력과 무관하게 어떤 식으로 작동할 수 있었을까. 주변에서의 도움은 어떤 식으로 받았을까. 14세 임신한 미혼모 엄마는 집에서 쫓겨나서도 어떻게 아이를 키우며(비록 노숙환경이라 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었을까...

각각에 대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대입해보자.

입영통지서에 대한 남자의 마음

요즘 말이 많은 CF.
안티 2천만 양성이라는데 흠...

솔직히 처음 보는 순간 울컥하기는 했음. 그런데 울컥했던 이유가 계속 찜찜하게 남아 있게 됨.

사실 군대는 X같음. 헌데 X같은 이유는 두가지 층위임.
한개는, 그냥 사적인 분노. 내 청춘이 썩는다든가, 군대에서 뺑이친다든가, 누군가는 고무신도 도망가고(나도 경험해봤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했다든가, 비리로 면제받고 나보다 출세한 넘이 있다든가... 뭐 그런 그런 사적인 분노다.
또하나는, 구조적인 저항이다. 군대는 사회악이며, 반전평화나 집총거부에 대한 양심을 거역하게 만들며, 권위주의적 사회의 원인 중 하나이고, 폭력과 억압에 둔감하게 만든다거나...

다 싸잡아 군대는 X같긴 한데, 저 CF를 보고 '울컥'한 2천만 안티들은 과연 어느 포지션인가.

후자의 경우라면, '거대 악의 축인 군대 입영에 대해 축하를 보냄으로써, 군대를 긍정화시키는 발상은 마치 일제시대 황군에 자살특공대로 자원입대하는 것을 찬양하는 행위나 다름없음.'이라는 식으로 안티가 될 만은 하겠는데...

전자의 경우라면 좀 애매해진다.
군대에 대해서는 긍정하면서, 개인의 경험에 대해서만 부정하는 경우라면 이건 사실 자기모순이나 다름없는 일.
그러니까, 만약 이 사람들은 본인의 경우만 아니라면 사실 군대가 X같을 이유는 없다는 것. 다만 CF의 남자주인공과 자기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불쾌할 뿐이지, 만약 본인들이 면제인데다 저 CF의 남자주인공을 자기 친구쯤으로 객관화시키면 그저 즐거운 경험일 뿐이다. (사실, 친구들 군대간다고 했을 때, 누가 분노하나, 그저 조금 동정하는 척하며 즐기고 - 내가 너라면 자살한다. -, 그거 핑계삼아 거창하게 술자리 벌리고, 나중에 면회간답시고 바람쐬러가는 거 아닌가.)
그러니 안티 2천만은 좀 오버.

하여간 '울컥'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본데, 그렇게 CF 하나에 울컥할 정도라면 최소한 군대폐지같은 걸 주장해야하지 않나. 울컥할 정도로 사회악이라고 본다면.
사회악은 아닌데 개인 경험이 X같았기 때문에 억울해 그런다...는 분이라해도 최소한 개인 경험이 X같지 않도록 군대가 개선되도록 사회에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엄하게 CF에 화풀이 하지말고. 사실 그런 입장으로 보면 CF는 그나마 군생활이 억울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아닌가. 케익사들고 면회까지 와준다는데.
그런 우정은 군대나온 남자들에게나 자격요건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초들은 그럼 군생활 내내 면회오는 여자 한분 없이 지내시든가.

맨날 꼴펨 운운하는 애들은 보면 그냥 자기 마초성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인 듯. 예비역이나 여자들이나 모두 사회의 구조적 약자들인지라 어느 한 쪽이 상대방을 억압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런 줄 착각하고 지들끼리 물고 뜯는데만 여념이 없다.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그 훌륭한 깨달음은 전역하고 나면 다 까먹는 걸 보면 확실히 군대는 이 사회의 라스트보스급.

ps. 그런데 이 광고, 시리즈를 전부 보니
'길거리에서 헌팅한 남친, 군대보내고, 베스킨라빈스가서 점원에게 껄떡대는' 스토리처럼 보이니 이건 이것대로 울컥할 만은 하겠다. ^^;

2009년 6월 18일 목요일

저항


개인 수준의 저항사례 (저항치고는 소심해 보이지만. 귀엽기도 하고.)

용산참사와 노무현대통령 서거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속에서 개인 수준의 저항이 집단 수준의 저항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날 수 있으려나?

가능성은 있어보이지만, 저항 그 너머는 아직 어떤 모습일지 나는 모르겠다.

2009년 6월 15일 월요일

과시욕 대상 마케팅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과시적 동물이다.
이사님은 점심식사시간에 주말에 있었던 골프이야기를 하시고, 맞은편 김팀장은 한정판 하루히 피겨세트를 구입했으며, 옆자리 조주임은 이번에 니콘 D700을 구매...
이런 시츄에이션은 어느 직장이든 일상다반사로 벌어지는 일.
그에 따른 개인의 반응은, 나도 차장 진급을 앞두고 골프를 배워봐야 하나 공연히 클럽 가격 검색을 해보고, 왠지 내 책상 위에 노호혼 하나라도 놔둬야 할 것 같으며, 장농안에 썩고 있는 캐논 20D에 만두렌즈 물려줘야 하나 고민하게 되기 마련.


이렇듯 가정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한데 부대끼며 살아가는 직장을 무대로 한 직장인을 타겟으로 하는 마케팅 방법.

쇼핑몰에서 상품 구매시, 직장으로 배송하면 할인해준다는 마케팅은 어떨까.
물론 모든 상품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전제 조건으로,
1) 직장에서 수령해도 지장없을 물건 (오히려 집보다 직장에서 수령하는 쪽이 맘편한(?) 물건) - 와이프에게는 비밀인 취미라든가, 아니면 몇시간이라도 빨리 받고 싶어할 만한 기대품이라든가,
2) 적당히 타인에게 자랑할만한 물건 - 양말세트 같은 거는 해당 안되니 적절한 기호품이라든가 한정품, 혹은 고가품.

이런 조건이라면 대부분 어른들의 취미생활 내지는 고가품 시장에 해당할 텐데, 익히 경험해서 알고 있겠지만, 이런 제품들을 받아서 직장에서 박스를 푸는 기쁨은 또 남다른 재미이다. 주위사람들의 적절한 관심과 추앙, 지름에 대한 guilty pleasure. 최소한 퇴근 때까지는 화제의 대상이 되는 뿌듯함.

또한 역시 경험칙상 직장 내에서 대개 취미는 공유되고 전파되기 마련. 누군가 직장인 밴드를 시작하면, 조만간 관심보이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어있고, 맥북을 지르면 하다못해 아이팟터치라도 누군가는 사들게 마련이다. 명품가방이 붐이 일 때도 있고, 갑자기 인라인 동호회가 생기기도 한다.

누군가, 근데 그거 어디서 사셨어요? 라고 물어보면 대개 자기가 구입한 곳을 알려주기 마련.

결론은, 직장으로 배송을 유도하라. 그러기 위해서 직장 배송시 1만원 할인 정도의 떡밥은 충분한 마케팅비용이 될만하다.




물론 실현은 쉽지 않다. 직장인지 아닌지 배송주소를 확인하는 방법은 쉽지 않으니. 그저 잠깐 떠올려봤던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

2009년 6월 10일 수요일

클라이언트가 되어보니...

그러니까, 늘 '을'로만 살다가 이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포지션이 '갑'이 되어 살아보니, 예전 '을'시절에 가졌던 의문점들이 많이 풀린다.

어째서 클라이언트들은 자기들이 실제로 뭘 원하는지 잘 모르는 걸까?
심지어  IT로 먹고 사는 회사인데도 클라이언트가 되면 갑자기 바보가 된 것 처럼 행동한다. 아니 왜 그러는거지? 자기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알려줘야 우리가 만들어줄 것 아냐...

=> 모르니까 돈주고 시키는 거지. 알면 직접 했게?
대체로 클라이언트들이 멍청한 것도 아니고, 또 클라이언트들이 경험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러니까, 클라이언트들은 진짜로 모르는 거다.
문제점이 뭔지 정확히 이해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면 굳이 비싼 돈 들여 남에게 맡길 이유가 없다. 이런 종류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컨설팅'이라는 게 필요한 것.

컨설팅의 영역이 아닌 외부발주는, 말 그대로 모르기 때문에 맡기는 거다. 한편으로는 모르고 싶기 때문에 맡기는 것이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비즈니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지, 그것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지 같은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만약 '돈'을 '돈'으로 살 수 만 있다면 프로그램따위는 건너뛰고 그냥 '돈'을 구매할테다.
직접 하겠다면 모르겠지만, 기왕 돈들여 맡기는 거라면 이제 또 굳이 머리쓰고 싶은 생각도 없어진다. 어차피 돈은 우리가 내는 거니까, 우리 돈을 따먹고 싶다면, 우리 머리속을 읽는 독심술쯤은 '을'이 가져야 하는 기본 스킬이어야 한다는 거지. 당연히 우리 입장에서는 독심술을 익힌 '을'한테 일을 줄테고, 뭐 그렇게 굴러가기 마련. 물론 '을' 입장에서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갑'이라는 게 두통의 원인이겠지만, 갑 입장에서는 그 '두통'을 피하기 위해 돈을 쓰는 거니까.

음. 역시 갑이 되는 것이 킹왕짱.

2009년 6월 8일 월요일

미소짓게 하는 패키징 - 글라소 비타민워터

코카콜라에서 아시아 최초로 글라소 비타민워터를 한국에서 출시하였다.

사실 오늘 담배사러 들린 가게에서 희번득 눈에 띄인 포스터를 보고 흥미가 땡겨 한참을 쪼그려 앉아 읽다가(포스터가 쓰레기통 옆에 붙어 있었음), 결국 회사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음.

맛이나 효능이야 안먹어봐서 모르겠지만, 어쨌건 패키지 자체만으로도 호감과 웃음을 주는 삶의 활엽수활력소가 될 법하다.


내눈을 잡아 끌었던 패키징 내용... (중간 부분의 문구를 확대해서 읽어볼 것)

2009년 6월 1일 월요일

군주론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목적을 위해서는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목적달성 후 정당하지 못했던 수단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전제하에.

그런 면에서 나는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는 조조 같은 스타일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군량부족에 시달리던 조조가 군량책임자였던 왕후에게 누명을 씌우고 처형함으로써 군대의 사기를 살리는 사례 같은.
비슷한 입장으로는 제갈량의 읍참마속 고사조차도, 인사를 잘못한 본인의 책임을 부하장수에게 전가하고 대신 군기를 다잡는다는 해석이라든가. (물론 그런 사건이 실제 역사인지는 차치하고.)

물론 이런 건 개인단위의 도덕률로는 용납되지 않는 사례이겠으나, 집단단위의 도덕률은 또다른 의미이니까. 음. 군주론에 나올 법한 이야기인 듯.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요즘은 꼬박꼬박 전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안붙이면 왠지 혼나는 분위기인 듯)을 그닥 마뜩치 않아 하는데, 물론 그가 그나마 다른 정치인들에 비하면 나은 수준임은 인정하지만, 그의 지난 통치행위 자체가 이런 신격화의 대상이 될 만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공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공은 지나치게 개인적,감성적인 부분이었고, 그의 과는 사회적,집단적인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권위주의를 벗어났다거나, 언론권력과의 의로운 싸움을 했다거나 하는 공은, 신자유주의로의 투항이나, 노동운동의 탄압같은 과랑 비교해본다면 내 이런 생각이 과히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개인으로서의 노무현은 훌륭했을지 모르겠으나, 국가의 통치자로서는 적절치 못했다는 뜻이다. 돌팔매가 무서워서 좀더 순화시켜보자면, 아무튼 이때, 이곳에 있을 대통령은 아니었다. 글타고 이회창이나 권영길이어야만 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역사상 그랬던 지도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겠다만, 나는 가장 비슷했던 이로 예수를 들고자 한다. 그의 사적이 역사적 사실이었건 아니었건간에, 예수의 삶이나 철학은 분명 훌륭한 건 사실이다. 그 철학을 녹여 담은 기독교도 나쁜 건 아니다. 개별 교인도, 세상에 뿌리부터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나.
헌데 이 세가지 - 예수, 기독교, 기독교인 - 를 한데 버무리고 나면 그 결과물은 생각만큼 그닥 좋지 않다. 노무현, 노무혀니즘(그 실체가 뭐든간에), 노빠(혹은 지지자)를 한데 버무린 결과물도 딱 그정도이다. 대략 좋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평소대로라면 이때쯤이면 슬슬 내 안의 가장 저열한 변덕이 시키는 대로 시의적절한 쿨게이질을 할 타이밍이긴 한데, 이번 만큼은 그냥 가만히 있는 이유는, 고인에 대한 예의나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고, 크게 보아 목적을 정당화시키는 데 적절한 떡밥 - 수단인 듯 하여.

현실적으로는 별로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진보와 양심의 아이콘이 되어, 이 나라 최고 난제 중의 하나였던 박정희컴플렉스의 유일한 대항마가 될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 요즘의 시국 관전 포인트. (차차기 선거 즈음 누군가는 노무현의 적자임을 내세우며 출사표를 던질 지도... ) 더불어 수구반동의 앙샹레짐 체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 그가 살아있었고, 대통령이었을 때에는 그에게 기대했었으나 배신당했던 가치들에 대해, 역설적이게도 그가 죽음으로써 그의 신화화에 힘입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을 조짐이 보이니, 이 또한 예수에 비견될 만하겠다.

고로, 때로는 쿨게이질을 닥치고 조용히 판이 짜여 돌아가는 것을 음흉한 미소로 지켜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하긴, 근데 이것 역시 2MB와 앙샹레짐이라는 거대악이 존재하는데다가 스스로 멍청하기까지 해서 가능한 멍석이니 이야말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딱 좋은 타이밍. 과연 떡을 먹을 수 있게 될른지야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은.



ps. 나 자신이 쿨게이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쿨게이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의 학자연한 태도들이 그저 송양지인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싶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학자라면 나역시 '팩트골룸'에 목을 매겠지만, 나는 저열한 음모가에 가까운지라 사실 크게 보아 목적에 부합한다면 팩트따위는 개나 줘도 된다고 생각.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서서 노무현 신격화를 위한 유언비어를 유포할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저 이용할 수 있을만큼 이용하면 된다는 생각?

2009년 5월 27일 수요일

설명이 어렵다.

처가는 식구들 모두(장인, 장모, 처남, 처남약혼녀, 와이프)가 공무원인데다, 정치적성향이랄까 인생관은 리버테리언부터 우파적아나키즘까지(그런데 공무원의 사상이 이래도 되나?)의 스펙트럼.
심지어 그나마 가장 나랑 통하는 와이프마저도 잘봐줘야 리버럴.

왜 이야기를 하냐하면, 옆집에 살고 아이봐주는 것 때문에 처가에서 반쯤 생활하다보니, 처가식구들의 인생관과 미묘하게 충돌.

이번 노무현전대통령의 자살건에 대한 입장차이가 너무 나서, 그렇다고 가뜩이나 빨갱이로(!) 찍힌 내가 이러니 저러니 말할 것도 없고(게다가 난 노무현을 지지하지도 않으니까.). 그래도 해소하지 못할 이 답답함.

1) 기소와 구속의 차이를 이해못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은 함. 굳이 공판중심주의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죄의 유무여부는 법정에서 결정되어야 함에도 많은 이들은 '기소' = '유죄'로 생각하고 있음. 즉, 검찰에 의해 기소된 순간부터 죄인으로 낙인찍히게 됨. 이미 처가식구들에게 노무현은 뇌물받은 파렴치범으로 확정되어 있음.

2) 선의와 악의를 구별못한다.
원래 노무현에게 적용된 포괄적 뇌물수수죄는 노무현이 '악의' - 가족의 수수사실을 인지하였음 - 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하에 성립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인지/불인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 돈받았음'에 방점을 찍게 됨. 따라서 노무현이 인지를 했든 아니든, '권력을 빌어 가족이 뇌물받은 파렴치범'이 됨.

3) 뇌물죄의 성립요건을 이해못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은 경제행위일 뿐,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뇌물죄는 공무원에게 대가성과 업무관련성에 관련되었을 때 발생하는 특이한 사항이다. 즉, 돈을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돈이 어떤 맥락으로 건네어졌는가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찌되었건 돈받았으니 뇌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법정에서 어떻게 공방을 하느냐에 따라 포괄적 뇌물수수일 수도 있겠으나, 그저 증여세미납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을 수도 있겠다.

4) 공소권에 대해 이해못한다.
어째서 검찰은 권양숙여사를 기소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전대통령을 기소했는가... 그리고 왜 노무현전대통령 서거후 검찰은 공소권없음으로 사건을 종료했는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함. 뇌물죄는 노무현이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며, 그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그저 증여세미납의 문제일 뿐, 돈을 주고 받은 사람들과 행위는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노무현의 인지여부만이 핵심일 뿐, 그 금액이 얼마이든, 어디에 썼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리사욕'에 썼다고 생각할 수록 인지여부와는 상관없이 죽일 범죄자가 되는 것.

5) 그러다보니 생기는 오해
일단 작동기제가 이렇다보니, 노무현 전대통령은 잘해야 법정에서 무죄가 된다쳐도, '돈받아먹었지만 교묘히 본인은 법망을 빠져나가고 가족들에게 죄를 전가한 파렴치범'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법정에서 구속당하고 '거봐, 다 똑같은 넘들이지. 전두환, 노태우 같은 넘'이 되버리는 구도.
이렇게 따지면 검찰과 그 뒤의 정부는 충분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임. 일단 우리 처가식구들에게 그러한 마인드를 심어주었으니.


사실, 이렇게 따지면, 우리가 주고받는 경조사비도 아슬아슬하게 뇌물죄의 경계에 걸쳐져 있다. 아, 그러고보니 왜 처가식구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하나 했더니... 우리 처가식구들은 타인의 경조사에 참여를 거의 안한다. -_-a 그래서 그랬구나...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자살할 각오로 ...

1)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서 수면제를 왕창 먹은 적이 있다. (약살 때 처방전이 필요없던 시절 이야기)
털어넣은 순간부터 후회와 공포가 물밀듯이 밀려옴. 그래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전화... 그래도 약먹었다, 자살한다 이야기는 못하고, 공연히 빙빙 돌려가며 누군가 눈치채주길 바랬으나... 이런 둔감한 녀석들.
결국 혼자 목구멍에 손넣어 게워내고 그 다음날부터 멀쩡하게 잘 살았다능...

2) 한창 방탕하게 놀던 어린 시절, 1주일쯤 만났던 아가씨가 갑자기 자살을 했다. 새벽에 삐삐로 유언을 받아보는 건 참으로 괴기스러운 경험이다.

3) 요리사였던 6촌형은 연애에 실패한 후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4) 회사동료 하나가 며칠 전 집에서 목을 매어 자살. 원인은 아마도 실연인 듯. 외부에는 교통사고라고 알리는 바람에 집에서는 쉬쉬하고 싶었겠지만, 전 사원이 문상하러 가는 블랙코미디를 연출함.

5) 우리 와이프는 내가 자살하기에는 삶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절대 자살하지 못할 위인이라고 평한다.

실없는 소리는 여기까지이고....

흔히들 자살할 용기와 각오로 살아가면 못 이룰게 뭐 있겠나... 라고 말한다. 물론 자살은 그다지 좋은 문제해결법이 아니기 때문에 자살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살은 당사자에게는 일생일대의 각오와 용기를 쥐어짜내야만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자살하는 대신 그런 각오와 용기를 매일매일 가지고 살라고 한다면... 어쩌면 자살이 가장 쉬운 일일지도...

2009년 5월 19일 화요일

환뽕주의보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뽕이 문제다.


나머지는 생략한다.


한동안, 나는 신자유주의를 우리가 대결해야할 전선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여기서 우리... 라 함은... 별 의미없다. 넘어가자.)
그런데 지금보니 신자유주의보다 먼저 환빠에게 전선을 세워야 하겠더라.

환뽕을 단순히 환단고기 및 기타 판타지랄 자위도구로 한정짓지 않는다면, 크게보아 주체사상도 일종의 환뽕이요, 닥치고성장주의도 환뽕이요, 엘리트스포츠도 환뽕이요, 한류빙자지랄들도 환뽕이요, 어글리코리안도 환뽕이고, 국가랭킹에 목매는 것도 환뽕이며,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문제들도 환뽕이고, 마이너들에 대한 인권문제도 환뽕 때문이다...

민족-국가 중심 세계관에서는 개인의 실존가치라든가, 공동체의 선에 대한 가치관이 모두, 우리민족-우리나라를 기준으로 가치매겨지기 때문에 외부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러니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면 비정규직쯤은 희생해야하고, 농업따위는 FTA로 핸드폰이랑 바꿔먹어도 되는거다. 비정규직 개인, 농민 개인이 아니라... 나, 우리 가족이 아니라... 그저 정체불명의 우리민족-우리나라를 위한 사회. 집단으로 환뽕에 취한게 틀림없다.

환뽕에 취한 덕에, 국대경기에만 환장하는 거고, 고대는 김연아를 낳지 못해 안달이며, 열등하고 마이너한 것들에 신경쓰자는 국가인권위는 축소되어야 하고, 국가경쟁력이라는 미명하에 어린쥐 타령이 등장하는 것. FTA는 무조건 우리에게 이익인 것이고, 광우병같은 건 우리 민족은 안 걸리는 병이다. 황우석사태는 환빠스틱의 집대성이나 다름없고.

지금보니 김지하니 황석영이니 하는 이들은 결국 진보인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환빠였다라는 결론인데...
사실 눈치챌려면 눈치챌 수도 있었고,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민노당의 해묵은 주사파 논쟁이 바로 그것 아니던가. 진보라는 깃발 밑에 환빠들이 동거하고 있었던 것 뿐.

아스트랄한 것이, 똑같은 환뽕을 맞더라도 어느쪽은 진보라는 탈을 쓴 환빠요, 어느쪽은 보수라는 탈을 쓴 환빠인 것이, 황석영과 2MB가 딱 바로 그 사례이니, 누구 말마따나 진보,보수 나누는 것은 무의미할 지도. 그런 의미에서의 (환빠로의) 중도실용. 옳커니!
그러니 대동단결하여 환빠와의 대립전선을 공고히 하는 것이 아마도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싶다. 나머지는 환빠척결 후 다시 생각해보자.

ps. 그런 의미로 capcold님은 환빠척결 캠페인이라도 벌여주시기 바란다.(응?)
ps2. 대 환빠 및 사이비 전선에 앞장서는 용자들의 블로그로는 아래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