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입국하면 보나마나 청와대 만찬 한번 갈 텐데, 빙상연 어떤 똘아이가 눈치없이 피겨복 쫄쫄이를 선물하는 건 아니겠지?
2009년 3월 30일 월요일
대한민국 성공의 비결
김연아가 챔피언이 되었고, 야구는 세계 1~2등쯤 되었다.
이쯤되면 뉴스도 특별편성되기 마련이고 자뻑모드 집중탐구 프로같은 것도 편성되는 것이 방송의 생리.
그런데 이런 방송을 보면 결론은...
"이렇게 인프라투자 없는 척박한 환경속에서 역경을 딛고 쾌거를 이룩한..." 이 되기 마련. 더불어 "기본 베이스가 탄탄한" 일본이나 기타 선진국과의 비교도 양념삼아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기본투자가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 대한 개탄과 나아지길 바란다는 덕담수준의 입장표명은 보너스.
물론, 이러한 대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는 성공신화라는 점에서는 최상의 시나리오이긴 한데, 대부분의 반전영화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류의 전설은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 인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면 엉성한 구멍이 생기기 마련.
즉, 뒤집어 말하자면,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처럼) 사회적 차원의 인프라투자를 아무리 해봤자, 김연아나 박태환이나 봉중근이나 박지성같은 개인 하나를 못이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 이래놓으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투자수익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차라리 기본 베이스같은 것에 투자하느니 그냥 열악한 대로 놔두는 쪽이 투자대비 더 좋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어쩌다 가끔 성공케이스가 하나만 나와도 기본투자가 제로이다보니 수익률은 무한대에 수렴...
물론 그럴리야 있겠나... 뭐라 해도 여전히 야구는 일본쪽이 미세하나마 우위인거고, 여자피겨 올림픽 출전권도 일본이 우리보다 한장 더 많은게 사실. 아주 확률이 적은 특이점 하나가 마치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정도.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특이점 자체에 환장한다는 것. 일단 출발점이 열악할 수록 좋아하고("라면만 먹고 뛰었어요."), 반대로 골지점은 세계 1위여야 한다는 점. 적당히 세계 10위 수준... 이런 건 듣보잡 취급. 세계랭킹 110위인 테니스 이형택선수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으며, 아니 그걸 떠나 오늘 김연아랑 같이 뛴 한국 선수는 이름이나 기억하고 계신가?
그러다보니, 기초투자란 말로만 부르짖는 것. 왜냐하면, 기초투자를 한다 해서 단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하지 않아도 성공케이스가 간간히 나와주기만 하면 그걸로 끝. 애초에 성공케이스가 아예 안나오면 문제거리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아웃오브안중인 마당이니 이거 참 편리한 구조다.
더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는 참 오묘해서, 열악한 환경에 있을 수록 세계 1위 성공확률이 더 높은 듯.(그래 보이는 것뿐이겠지만.)
투자의 규모로 성공을 이룬 것은 산업분야의 일부(반도체, 조선 같은...)이며, 어떤 경우에는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고 관심을 쏟을 수록 그다치 한계효용이 올라가지 않는 것도 있는 듯 하다.(정보화지수 같은거?? 아니면 학력지수 같은거...)
반대로 세계에 좀 알려졌지 싶은 것들은 어찌나 하나같이 다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출신인건지.
그러니 놀랍지도 않은 결론.
"대한민국은 해당 분야에 사회적 투자가 없을 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다."
(응?)
결국, 대한민국의 사회자체가 공동체의 책임이나 시스템보다는 사적인 능력이나 재능에 기반하는 사회라는 반증이며, 구성원들조차 그러한 구조를 당연히 생각할 뿐더러, 나아가 그러한 구조를 오히려 갈망하는 상태라는 점.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나 사민주의가 힘을 못쓰는 이유...이지 싶다. 이러한 마인드이니 가난은 개인의 노력문제일 뿐이요, 사교육은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기회보장이라는 망발이나, 회사의 제일목표가 주주가치실현이라는 망상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는 듯.
2009년 3월 22일 일요일
WBC 중계 다 좋은데...
연봉이야기는 뭐하러 하는지 참 거슬림.
물론 그게 저평가된 한국야구의 현실을 나타내주는 가장 현실적인 지표라든가, 혹은 시청자의 흥미를 돋우는 좋은 떡밥이긴 하지만.
말끝마다 연봉이 몇배이네, 연봉을 합쳐서 얼마네... 마치 연봉이 실력의 지표라든가, 또는 연봉이 선수인생의 목표가치인 것 처럼 느껴져서 왠지 천박해보임.
하긴, 예술도 돈으로 환산해야하고, 문화도 돈으로 환산해야하는 판에, 스포츠라고 돈으로 환산안되겠나... 아마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면 야구도 듣보잡 종목으로 전락할 것임.
돈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너무 돈돈 그러니까 스스로를 싸구려로 만드는 것 같아 아쉬움. 사람들이 전부 돈에만 관심을 보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돈에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건지...
ps. 그러나 역시 일본보다는 미국이랑 결승에 붙었으면 좋겠음.
2009년 3월 19일 목요일
피라미드 RSS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구독블로그가 필요할까?
블로그를 읽는 이유가 인식의 확장이라면, 메타블로그등을 찾는 이유는 인식의 확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일테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메타블로그들은 노이즈 대 신호비가 그닥 좋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집단지성이랄까, 인기투표랄까, 이러저러한 메타블로그들의 시스템으로 추천되는 블로그들에 대한 내 만족도도 그닥 높은 편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을 일일이 내 경험으로 추적 확인해봐야 하는 것 자체도 귀찮다.
현재 내 RSS리더기에는 200여개의 블로그가 등록되어있다. (블로그 읽는데 바빠 블로그 쓸 시간이 없다는 좋은 핑계.) 여하튼 이러다보니 RSS리더기에 등록된 블로그들을 관리하는 것만 해도 큰 일. RSS 리더기를 관리하다보면 늘 뭔가 2% 아쉽다.
그리하여 생각해본 다단계 혹은 피라미드 RSS.
예를 들어 내가 Stella et Fossilis(http://conodont.egloos.com/)를 즐겨 읽는다고 하자. 내가 그를 즐겨 읽는다는 것은, 내가 별이라든가, 공룡이라든가, 화석이라든가, 창조론자들과의 플레임워라든가 이런 이야기를 즐기기 때문일거다. 또 내가 초록불의 잡학다식(http://orumi.egloos.com/)를 즐겨 읽는다고 하자. 역시 유사역사학에 대한 입장이 나와 비슷하다거나, 작가로서의 그가 취향에 맞는다든가 하는 이유이겠지. 아무리 유머넘치고 재미있고 인기있는 블로그라 한들, 내가 관심갖지 않는 분야라면 바이바이.
가설 1) 어떤 개인이 구독하는 블로그는 그 개인의 관심과 취향의 연장범위내에 위치한다.
두 블로그를 즐겨보는 나는, 지구과학이나 역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사이비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다고 단언해도 될 듯. 물론 그보다는 좀더 복잡다단한 무언가겠지만 일단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인간은 내가 읽는 블로그의 합집합으로 외연을 두르고, 교집합으로 내포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듯.
가설 2) 어떤 개인이 구독하는 블로그 특성의 교집합은 그 개인의 고유성을 나타낸다.
가설 3) 어떤 개인이 구독하는 블로그 특성의 합집합은 그 개인의 관심범위를 나타낸다.
이런 경우, 그 개인이 과연 몇개의 블로그를 읽느냐에 따라 이 가설의 신뢰도가 달라질 수 있다. 너무 적은 수를 읽는다면 정확한 측정을 하기 위한 모수가 부족하여 빠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너무 많은 수를 읽는다면 느슨하게 노이즈가 끼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끝내주는 RSS 리더기가 있는데 유일한 단점으로는 구독등록이 10개까지만 가능하다고 하면 이 리더기를 사용하는 개인은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10개 중에 어떤 블로그를 포함시킬 것인가. 즉 개별 블로그들이 나에게 주는 가치에 대해 평가해야 할 것이고, 또 매우 신중하게 그 점수를 매길 것이다. 내가 비록 어떤 블로그를 사적으로 알거나, 평소에 매우 즐겨 봤었다 치더라도 10개 안에 넣어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테니까.
가설 4) 개인을 규정지을 수 있는 최소 구독 블로그 수 N이 존재한다.
내 생각으로는 개인차가 있겠으나 대략 10 ~ 20 개 정도가 아닐까 한다. 물론 어떤이는 스포츠신문 읽는 느낌으로 몇백개의 블로그를 읽어 제끼는 사람도 있을테고, 또 어떤이는 이 세상에는 딱 5개의 블로그만 가치있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상의 가설 1~4를 기반으로 피라미드(다단계) RSS 어그리게이션 시스템을 제안해본다면...
1) 나는 최대 10개까지의 블로거만 선정할 수 있다.
2) 각 블로거 역시 각각 최대 10개까지의 블로거만 선정할 수 있다.
3) 나는 내가 선정한 1차 블로거 10개와 그들이 각각 1차 블로그로 선정한 2차 블로거 최대 100개의 글을 읽을 수 있다. (중복 포함)
4) 모든 블로거가 신중하게 선택했다면, 이론상 110개의 블로그에서 올라오는 글들은 나의 관심과 일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5) 110개의 블로그 중에는 교차중복되는 케이스가 있을 수 있으며, 중복카운트가 높을 수록 나의 관심과 일치할 가능성이 특히 더 높을 것이다.
6) 1차 블로거 10개를 재조정하면 2차 블로그 100개는 그에 맞춰 자동 재조정된다.
10개의 1차 블로그를 선택하는 것만으로 100개의 '내가 관심가질만한' 블로그 리스트를 얻을 수 있다. 일일이 100개의 블로그를 찾아 해메지 말고, 내가 신뢰할만한 블로그들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 나의 투입노동력은 줄이고, 효과는 극대화하기.
10개의 1차 블로그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가 이 시스템의 첫번째 재미.
만약 내가 1차 블로그를 모두 프로그래밍 관련 블로그로 채운다면 100개의 2차블로그 대부분도 프로그래밍이나 그 비슷한 것들을 다루는 블로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에서 내가 1개의 프로그래밍관련 1차 블로그를 빼고 대신 영화관련 블로그를 하나 1차 블로그로 등록하면, 100개의 2차 블로그 중에도 영화관련 블로그들이 등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1차 블로그를 넣고 빼고 함으로써 스펙트럼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보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두번째 재미는 기대하지 않았던 발견.
한정된 블로고스피어라지만, 사람은 자기가 노는데서만 놀게 되기 마련이다. 이글루스 블로거라면 아무래도 이글루스 블로거만 알게 되기 쉽다. 네이버에도 좋은 블로그가 있겠지만 일일이 찾아다니기란 어려운 일.
허나 누군가는 그런 바운더리에서 넘어선 사람이 있을 테고, 운좋게 그런 이를 1차 블로거로 선택하면 2차 블로그로 나의 활동반경을 넘어선 곳의 블로그들이 보일 수도 있다.
세번째 재미는 용납될만한 정도에서의 일탈.
일상적이라면, 평범한 프로그래머인 나는 서양미술사 전문 블로그를 알게 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리고 그게 내 관심사와 관련있을 거라는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했을 일.
그러나 내 1차 프로그래밍 관련 블로그들 중의 어떤 이들이 어떤 서양미술사 전문 블로그를 그들의 1차 블로그로 선택했다면, 그들을 신뢰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선택 역시 신뢰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 선입견과는 달리 서양미술사가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접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 학문적 방법론이 프로그래머의 그것과 일치할 수도 있을테고, 혹은 그저 프로그래머의 단무지적 공돌마인드를 순화시켜주기에 서양미술사가 가장 유익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최소한, 내가 신뢰하는 그들이 선택한 것이라면 나 역시 신뢰할 수 있을 가능성은, 아무거나 찍어서 판단하기 혹은 메타블로그의 인기블로그의 그것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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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만들고 싶어했고, 만들려고 했었으나 실패했던 시스템. 누가 안만들어주나?
2009년 3월 18일 수요일
직장인으로서의 윤리학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상황이 있다고 하자.
나는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고, 회사에서 중요한 실무책임자로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XX는 사회의 악으로 안티XX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개인적 소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XX가 이번 회사의 가장 중요한 클라이언트가 되는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XX의 빈곤가정돕기 캠페인의 주관업체로 우리 회사가 선정되게 된 것이다.
문제는, 해당 업무의 중요성과 특수성 때문에 회사에서는 나를 총책임자로 하길 원하고 있으며, 같은 이유로 다른 누군가로 대체하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즉,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이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럴 때 나의 선택은?
1) 비록 개인적으로는 안티 XX라 하더라도, 이 사업자체는 공익성이 우선하므로 내 소신을 잠시 접어두고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한다. 그러나 안티XX로서의 일관성은 지키고 있다고 자위한다.
2) 비록 공익성이 큰 사업이지만 크게 보아 XX의 악행을 미화시키려는 술수이므로 이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2-1) 개인적인 소신을 회사에 알리고 이 사업에서 빠진다. 그 결과 회사가 망하거나 혹은 내가 잘리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2-2) 개인적인 소신은 감추고, 이 사업에서 빠진다. 핑계를 교묘히 대서 회사가 망할 지언정 내 책임은 아닌 쪽으로 만든다.
3) 마키아벨리적 천재성을 발휘하여, 사업에 참가하여 회사의 이익은 지키되, 교묘히 XX의 캠페인이 실패하도록 획책한다. 이 과정에서 나와 회사의 혐의를 발견할 수 없도록 한다.
4)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는 전혀 다른 페르소나이다. 집에서야 얼마든지 안티XX를 하고 회사에서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XX의 똥꼬도 성심성의껏 빨아 줄 수 있다. 이건 내적갈등이 될 꺼리가 아니다.
5) 이 기회에 안티XX를 관둔다.
솔직히 내 주관적인 입장은 3번이고는 싶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4번에 가까움.
작가나 프리랜서 처럼 혼자 일하는 스타일이라면 얼마든지 일과 개인적 소신을 일치시켜가며 일할 수 있겠지만, 직장인으로서는 그러한 부분이 매우 힘들 수 있다. 이러한 딜레마에 직장인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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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윤리학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기실 '양심'에 대한 문제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1번을 선택할 것이고, 또는 남몰래 5번을 선택할 것이다. 말빨이 좋은 사람은 4번을 선택할 것이고, 어쩌면 쿨게이들은 3번을 선택할지도.
그러나 2-1번을 선택하는 이는 용자 인정.
XX에는 정부를 넣거나, 삼성을 넣거나, 조선일보를 넣거나 해도 되며, 이 상황 자체를 양병거나 집총거부 문제로 치환해도 좋다. 과연 자신은 몇번을 택할 것이며, 그에 대하여 자신의 양심은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을까?
2009년 3월 17일 화요일
Guilty Pleasure
나이는 어느새 불혹을 바라보고 있고, 가장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며, 건실한 사회인이고(싶고), 나름 곤조있다는 소리까지 듣는데다 쿨게이의 이미지까지 쓰고 괜시리 잘난 척, 똑똑한 척, 쿨한 척 그러고 사는 주제에...
게다가 올해안에 읽어야 하고 사야할 책이 100권 정도 리스트가 쌓여있는 주제에...
이런 건 관심조차 가져도 안되지요.
| 기동전사 건담 일년전쟁사 -상 - 이미지프레임 편집부 엮음/이미지프레임(길찾기) |
| 기동전사 건담 일년전쟁사 -하 - 이미지프레임 편집부 엮음/이미지프레임(길찾기) |
설령 사더라도 이렇게 내세울만한 물건은 아니지요.
그러나 어떡합니까, 손이 맘대로 움직이는 걸. 어느새 정신차리고 보니 결재완료. 눈뜨고 보니 배송완료.네, 네. 사실 오덕 맞습니다. 맞고요...
일단 책에 대한 평 자체는...
1) 메인스트림이 아닌 변방지대에 사는 죄로, 이 정도 퀄러티를 소장가치라는 미명하에 구매해야 한다는 약자의 비애감.
2) 고작 권당 160 페이지인데 굳이 둘로 분책하고 각권 25000원씩이나 받아먹는 파렴치함.
3)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건덕후를 제외하고는 전혀 관심없을 이야기.
그래서 결론은,
잘 샀습니다. (응?)
그런데 집에 서재에 꽂아놔도 되는걸까? 조금 마눌님 눈치 보임.
떡밥
언젠가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기도 하거니와....
체질적으로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관들이 있다.
- 창조론 / 지적설계론 / 성경문자주의
: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한 반감때문이 아니라, 이것들은 말그대로 넌센스일 뿐이라서, 이런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포용적으로 관대한 이들을 보면 빨간 줄 하나 추가.
구글 검색을 해보면 '자연주의 진화론이나 문자주의 성경관이나 맹목적인 도그마라는 점에서 그게 그거다'라는 식의 글들을 많이 보는데, 이런 쿨게이들에게는 빨간 줄 두개 추가.
잘 몰라서 어느쪽도 믿지 않는다는 게으른 이들에게는 빨간 줄 반개 추가.
- 회사의 절대목표는 주주가치의 실현.
잭 웰치의 항복선언이 나온 마당에 아직도 이 명제를 최우선으로 놓는 사람들에게는 빨간 줄 하나.
이 명제는 그리디 알고리즘과 같은 원리로 동작하며, 그 비효율성과 근시안적인 폐해 역시 동일.
- 환빠
한동안 환빠질을 해본 경험으로 미루어보자면 이것은 창조론만큼이나 어처구니 없을뿐더러, 쇼비니즘을 거쳐 파시즘으로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빨간 줄 하나 추가.
- 음모론자
망상과 피해의식의 결합. 즐겁기는 한데,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곤란함. 그래도 재미는 있기에 빨간 줄 반개.
- 황빠 / 심빠
무식하다거나 해서가 이유가 아니라, 이들의 동작기제가 천박한 자본주의적 욕망이라는 엔진에다 피해의식과 파시즘이 결합된 트랜스미션으로 굴러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순교자로 여기는 과대망상이기 때문. 위험도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빨간 줄 두개.
- 불가지론자
사유의 결과로서가 아닌, 반사유의 원인으로 불가지론을 핑계대는 이들은 게으름이라는 죄목으로 빨간 줄 반개. 개인적으로는 게으름은 효율을 높이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라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해당안됨.
- 쿨게이
이른바 쿨게이에 대해서는 조건부 빨간줄 한개. 사자와 호랑이가 싸울 때 지켜보던 독수리가 왜 날아서 안싸울까하고 비웃는다는 이솝우화에서처럼, 대개 쿨게이들의 쿨해보이는 지적들은 사실 상당히 단말적이거나 특수한 말꼬리잡기 이상이 되기는 어려워보임. 비판적 시각은 필요하겠으나,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에 그치기 쉬우니, 솔직히 쿨게이들의 행태는 튀어보고 싶은 중2병일뿐.
그러나 나역시 쿨게이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다.
- 양비/양시론자
쿨게이와 비슷함. 쿨게이가 중2병이라면, 이쪽은 좀 더 현학적으로 보이길 원하는 고2병 쯤 되려나? 불가지론자와 교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음. 게으름에 더하여 비겁함을 추가하여 빨간 줄 한개. 황희정승쯤 나이 먹고 하는 짓이라면 빨간 줄 반개 정도 뺌.
그러나 그외 마초이즘부터 소아성욕자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가치관들에 대해서는 제법 관대하다.
왜 주절주절 이 이야기를 늘어놓느냐 하면... 오늘 RSS리더기를 정리하며 삭제한 블로그들에 대해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렇더라는... 오늘 삭제한 블로그 중의 한 개는 그런 줄 모르고 즐겨 읽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렇더라는, 나름 컬쳐쇼크였어서. 혹시나 이게 고도의 떡밥일까 생각해봤으나, 덥썩 떡밥을 물기에는 만사 귀찮음 모드라 그냥 삭제해버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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