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8일 화요일

30년 주기설이 돌길래

고종황제 : 1919년
김구 선생 : 1949년
박정희 전대통령 : 1979년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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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

순종황제 : 1926년
이승만 전 대통령 : 1965년
윤보선 전 대통령 : 1990년
최규하 전 대통령 :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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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30년 주기설이라면 남은 4명의 면면을 앞으로 30년간 더 봐야 한다는 소리. 이게 더 충격.



아무튼, 숙연해지는 날이네요.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죄수의 딜레마 보론

서울비님의 교실에서 해본 Win-Win 게임이라는 포스팅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몇가지 생각이 뻗어나가는 것들이 있어서 보론 성격의 포스팅.

1) 인류애와 진화적으로 지속가능한 전략(ESS)
물론 엑셀로드 이후 이 게임이 특별히 새로운 것 없이도 자주 반복되는 실험이긴 하지만, 서울비님의 교실실험이 흥미롭고 유의미했던 지점은 이 죄수의 딜레마를 '인류애' 혹은 '양심'이라는 키워드로 타파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고찰이라고 본다. 교실과 학생... 이라는 특이점과 순수함이라는 성격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러한 접근법은, 이상적일 수는 있으나 진화적으로 지속가능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이 되기는 어렵다. 바로 '틈입'에 취약하기 때문. 역설적으로 '교육', '양심', '도덕', '인류애' 무엇이든간에 W카드를 내도록 하는(배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압력이 강한 집단일 수록, 극소수의 배신자에게는 '배신'의 보상이 더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2) 내쉬균형
우선, 서울비님의 점수 룰은 그대로 둔 채, 경제적 동기를 부여해보자.
이 게임의 참가자는 수회 연속(주최자가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으로 게임을 한 후, 각 팀이 획득한 점수만큼 주최측으로부터 사탕을 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당장 양쪽팀은 상호협력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득실과는 상관없이 나의 점수만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이 게임은 상호협력전략이라는 내쉬균형에 이르게 된다.
마치, 월드컵 조별예선전에서, 무승부만 하면 두 팀다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축구팀처럼 두 팀은 주최측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상호협력을 통해 자신의 보상을 극대화하는 한편, 상대로부터 불필요한 견제를 받지 않기를 원한다. 이런 경우 배신으로의 유혹은, 단 1번의 확실한 이득에 비해, 남은 기간동안 벌어질 혼선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서로 바람직하지 않은 전략이 된다. (이 게임에서 남은 경기 수는 주최자만 안다는 것을 주의)

3) 기간의 한정
그러나 이러한 내쉬균형은 단순히 게임 회수를 미리 한정지어 공지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10게임을 진행할 것임을 미리 공지한다면, 9게임간 상호 협력하여 27점씩을 획득한 상태에서 보복의 걱정없이 6점을 얻을 수 있다는 배신의 기회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물론 상대방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상호배신의 방아쇠는 좀 더 일찍 당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늘 보고 내일 안볼 관계가 아닌 한 이러한 기간한정 룰은 약간 비현실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집단내에서의 사회적 약속이 배신에 대한 억제책으로 작용할 수 있는 힌트라 하겠다.


4) 목표의 한정
그렇다면 게임의 룰을 바꿔서 10회 게임시 15점 이상을 획득한 팀에만 사탕을 일정갯수 준다면 어떻게 될까?
점수에 상관없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사탕갯수가 일정하다면, 양팀은 서로 15점 이상을 유지하는 선에서 상호협력이 이루어질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15점 이상의 추가점수를 얻기 위한 전략 중에 배신이라는 선택지는, 보상되는 사탕에 비해 사회관계속의 불편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점수에 따라 지급되는 사탕의 갯수가 다르다면 또다른 전략이 필요하긴 하겠다. 배신의 보상에 따른 추가이익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크다면 배신은 사회압력을 이겨낼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 될 수 있다.

어쨌거나 공동의 목표가 존재한다면 충분히 상호협력이 이루어지도록 사회적 압력이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배신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배신의 유혹이 너무 크도록 보상이 과도하기 때문은 아닐까?


5) 배신,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이제, 점수 룰을 바꿔보자.
W-W의 경우 : 각각 6점씩 부여함으로써 상호협력의 보상을 키운다.
M-M의 경우 : 상호배신의 페널티를 더 늘려서 각각 -6점씩 준다.
W-M의 경우 : 배신의 유혹을 줄이고자(?) 배신으로 얻는 이익을 1점만 주고, 배신당한 쪽의 페널티는 0점만 부여한다. (파격적이다!!)

확실히 서울비님의 최초실험보다 배신의 유혹을 덜 받도록 구조화시켰다. 사소한 이익을 얻기 위해 배신을 하기에는 그 리스크가 너무 크다. 아마도 이러한 점수 구조는 상호협력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유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수 구조조차, 반드시 상호협력을 보장하는 마법의 주문은 아니다.

서울비님의 학생들을 2명씩 짝지워 교실 토너먼트를 주최한다고 하자. 최종 우승자가 뽑힐 때까지 토너먼트를 진행하고, 최종 우승자에게는 사탕을, 나머지 탈락자들에게는 화장실 청소를 시키도록 하자.

이러한 전형적인 승자독식시스템에서는 배신은 유혹이 아니라 구조가 된다. 비록 마이너스 점수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상대방보다 1점이라도 높아야만 다음 토너먼트로 올라갈 수 있다면, 배신은 경쟁을 위한 가장 좋은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6) 다시 처음으로.
애초에 '점수'를 부여한다는 것은 점수에 따른 보상차이가 존재한다는 함의이다. 승자'독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승자와 패자사이에 '격차'가 존재하고, 그 '격차'가 보상의 절대량만큼이나 중요하다면 배신은 '격차'의 확보를 위해 중요한 도구가 된다.
토너먼트 형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가치관의 집단 속에서는 배신의 가능성은 상존하게 된다. 심지어, 상호협력하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이 강한 집단일 수록, 역설적으로 배신자가 성공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배신을 하지 못하도록 교육이나 도덕이나 양심이나 인류애를 강조할 수록, 외부로부터의 배신자의 틈입에 취약해진다.


'보상'과 '격차'는 현실속에서는 자본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동작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 앞에서 상호배신 대신 상호협력을 통한 공동이익의 증대를 목적으로 한다면,

1) 보상과 격차를 무효화하던가 (자본주의의 폐지)
2) 배신자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공적 복수'를 집행하던가 (국가의 규제, 개입)

그러나 단지 성선설과 비슷한 입장으로 상호협력 예찬론식의 접근이라면, 이 게임 자체에 숨어있는 구조적 모순 대신 배신자 개인의 양심문제로 치환되버려, 학생들로 하여금 근본적인 모순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도록 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우가 든다.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보안을 위한 타임아웃

가끔 어떤 웹서비스를 이용하다보면,
일정시간동안 새로운 액션이 없으면 사용자를 강제로 로그아웃하게 하는 기능이 있는 경우가 있다.

보안상, 웹페이지를 열어둔 채로 장시간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서비스 기획자의 고마운 배려.

과연 그럴까?

"외근 중 급한 용무로 PC방에 들려서 업무를 보던 중,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랫배의 싸늘한 신호... PC를 내팽개쳐둔 채 부랴부랴 터질 것 같은 배를 끌어앉고 간신히 화장실을 찾아 세이프, 30분간 폭발하는 설사와의 악전고투 동안, 내 옆자리에 앉았던 산업스파이가 내 자리에 앉아 회사기밀을 훔쳐보다..."

요정도가 조금 과장되긴 했어도 기획자가 상상한 시나리오.

그러나 실제 업무에 이러한 경우가 존재할 리 없다. 우선, 이런 습관의 사용자라면 구멍이 이것 하나일리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보안의식부터 고치는 것이 우선.
그 다음, 브라우저 창을 닫는 것은, 일반 어플리케이션을 종료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일반 어플리케이션이야 경우에 따라 작업문서를 저장하라는 둥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며 종료되지 않고 버티는 경우가 있긴 하다. 아마 모두들 '컴퓨터 끄기'를 하고는 안심하고 자리를 떴다가 돌아와보니 저런 메시지를 띄운 채 컴퓨터가 그대로 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웹브라우저는 닫으면 닫긴다. (브라우저가 '죽어서' 안닫기는 경우는 예외) 즉,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기밀'을 '보호'할 수 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다운로드한 파일들이라든가, 캐시에 저장된 내용들에 대한 보호일 테다. 물론 이런 것은 타임아웃으로는 어차피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또다른 문제점은, 의도와는 달리 이러한 기능은 사용자의 자연스러운 업무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자리를 비우지 않고 단지 '다른 작업'과 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이 타임아웃기능은 치명적인 업무방해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의 사내 게시판은 일정시간 이후에 자동로그아웃된다. 그 결과는 보안성의 강화가 아니라, 몇십분동안 공들여 작성한 사내 공지물의 날아감이다.
내가 쓰고 있는 텍스트큐브 역시 일정시간 이후 자동으로 로그아웃된다. 왜 로그아웃을 시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창을 띄워놓고 자료를 모으고 조사하다 보면 어느새 타임아웃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내가 너무 창을 오래 띄워놓는 것이 이유이긴 하겠다.
물론, 이런 사용자를 위해 '임시저장' 기능이 있으니 그나마 텍스트큐브는 양반이겠다. 가끔 임시저장 버튼이 저 혼자 활성화되었다, 비활성화되었다 하는데 나는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안전하게 글을 완료할 때까지는 스톱와치를 놓고서 글 작성중 알람이 울릴 때마다 비공개상태로 저장해두는 것이 더 좋은 습관이라는 것을 구글 텍스트큐브팀이 가르쳐주는 친절함인지도.

트윈캠프라는 서비스를 매우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주지하다시피, 팀관리어플리케이션이란 종류는 문자그대로 '배경화면'처럼 늘 화면에 띄워두는 편이 좋다. 그래야 업무도중 수시로 확인해보며 팀관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윈캠프 창을 열어 둔 채 다른 업무를 보다보면 어느새 트윈캠프가 정해놓은 타임아웃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 그러면 다시 부랴부랴 새로 로그인을 해야한다. 아, 재로그인에 소요되는 나의 업무시간 로스와 집중도 방해는 트윈캠프가 보상해주는가.


내 생각에, 타임아웃은 보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적으로 자동으로 서버와의 통신이 수행되어야 하는 종류의 웹어플리케이션에서 서버의 부하를 줄이기 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타임아웃을 통한 로그아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사용자를 생각하는 척 하는 기획자와 개발자의 집단자위행위일 뿐.

2009년 8월 7일 금요일

만.족.

시청역 8번 출구 3분거리.
20년 전통의 오향족발집 "만족"

1시간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사람이 너무 많고 금연인게 아쉬울 뿐, 족발에 아무런 불만은 없다. 대자 하나로 5명이 먹을만한데, 사실 줄서서 대기하는 동안 치킨집에서 맥주와 치킨으로 배를 채웠기 때문.

어차피 줄서야만 먹을 수 있기에, 족발이전에 맥주와 치킨은 코스나 다름없다. 대자 하나에 3만원이고, 만두국은 서비스. 새우젖대신 양파즙에 양배추채썰어 족발과 먹으면 그만.

별 다섯개에 네개 반쯤 되겠다. (금연이 마이너스 반개.)

2009년 8월 6일 목요일

2009년 8월 5일 수요일

써머타임

"사장님, 내년에 써머타임을 실시할지도 모른다는데, 우리 회사도 적용해야 할까요?"

"응? 우리 지금 출근이 9시 반이잖아. 써머타임 적용안하면 10시 반 출근이 되는 건가?"

"... -_-a ... 그, 그게 아니구요, 써머타임 적용하면 지금감각으로는 8시 반 출근이 되는거지요."

"그래?"

"써머타임을 적용하면, 해가 있을 때 일과시간이 끝나니까, 아무래도 야근가능 시간이 더 늘어나는 셈이네요. 해있을 때부터 연장 근무가 될테고, 어차피 밤늦게까지 일하게 되니까."

"그건 아니지."

"네?"

"니들 술 마시는 시간이 더 늘어나는 거겠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서비스업 발전을 위한 가카의 명료한 정책.

2009년 8월 4일 화요일

Word of the day : Wait, shit

"Dude, my dick is so big that if I laid it out on a keyboard, it would go from A to Z.

Wait, shit."

Wait, shit : Something someone would say after realizing what they just said or did was idiotic or bad.

Entrapment Game

여기, 현금 100만원에 상당하는 매력적인 다이아몬드가 있다.

이 다이아몬드를 경매에 내놓고, 참가자들에게 입찰을 하도록 한다. 시작가격은 100원이며, 100원 단위로 순차입찰할 수 있고, 물론 최종적으로 단독입찰이 될 때까지 경매가 진행되며, 최고단독입찰자에게 다이아몬드가 낙찰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경매룰과 다를 게 없는데, Entrapment Game에서는 한가지 룰이 추가된다. 경매에 참여하는 모든 입찰자들은 자신의 최종 입찰가액을 반드시 주최측에 지불해야 한다. 즉, 내 최종 응찰액이 5000원이었다면, 경매가 끝난 후 반드시 주최측에 5000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경매에 참여하는 이들의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최선의 전략이 존재할 수 있을까?

최초 입찰자 A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나는 지금 이 경매에 최초로 입찰한다면, 100원의 예상손실로 100만원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이들이 응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반드시 나에게 낙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단계에서내가 잃을 손실은 겨우 100원뿐이다."

두번째 입찰자 B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내가 지금 이 경매에 입찰한다면, 200원의 예상손실로 100만원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이들이 응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반드시 나에게 낙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단계에서내가 잃을 손실은 겨우 200원뿐이다."

참가자들이 모두 상호경쟁자라면 이 경쟁은 더욱 강화된다. B의 생각을 더 들여다보자.
"게다가, 지금 내가 입찰하지 않는다면, A는 100원의 비용으로 100만원의 이익을 얻게 된다. 만약 내가 A보다 100원만 더 투자한다면, 100만원의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내가 더 높아지게 된다. 게다가 설령 A가 300원으로 재입찰하여 A가 낙찰받게 된다하더라도 최소한 A에게 200원의 추가손실을 강제시킬 수 있다."

이후, 계속적으로 C,D,E... 들의 생각도 마찬가지. 어찌되었건 경쟁자보다 100원만 더 투자하면 다른 경쟁자들에게는 손실을 강요하면서 혼자 모든 이익을 차지할 수 있다는 유혹은 매력적이면서 합리적으로 보이기때문이다.

이러한 경쟁은 계속 빠르게 진행되다가, 참가자가 2인이라면 50만원 근처에서, 그리고 참가자가 그 이상이라면 전체 입찰가 총액이 100만원의 합에 근접할 때 잠시 멈칫하게 된다. 즉 2인이 참여중이라면 한명이 499900원을 입찰했을 때, 또다른 한명이 50만원을 부르는 순간이다.

이 시점은 주최측이 경매참여자 전체와의 게임에서 승리를 확정짓는 순간이다. 이 다음 입찰부터 전체입찰총액은 경매상품의 가치를 넘어서게 되며, 경매참여자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경매참여자 집단전체의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인 결과가 되버린다. 만약 어떤 경매참가자가 이 게임의 원리를 깨닫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개인적 수준에서는 설령 999900원까지 가격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입찰가가 상품가를 초과하지 않는 한 낙찰을 받는 쪽이 더 이익이기 때문에 경매에 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미 기존에 입찰을 했었다면 경매포기는 그 시점에서의 손실액을 확정짓게 되므로 상당한 심리적 저항을 겪게 된다. (손실확정에 대한 공포는 주식투자에서 손절매시기를 놓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
게다가 입찰참가자가 많을 수록 이 순간은 더 빨리 도래하며, 예를 들어 입찰참가자가 141명 이상이라면 각자 겨우 1회씩의 입찰만으로도 주최측은 손익분기점을 넘게 된다. 최고 입찰자가 고작 14100원을 가벼운 마음으로 처음 비딩했을 뿐인데도.

두번째 특이점은 입찰가가 상품가에 근접하는 순간 발생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상품가를 넘어서는 입찰가는 없어야 한다. 합리적인 경매참가자라면 상품의 낙찰로 얻을 기회이익보다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Entrapment Game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법칙은 통하지 않는다. 만약 이 다이아몬드 경매에서 특정참가자 X가 100만원을 입찰했을 때, 999900원을 투자했으나 X때문에 낙찰을 받지 못한 이전 입찰자 Y로서는 999900원을 그대로 잃는 쪽보다는, 차라리 100원을 손해보더라도 1000100원에 다이아몬드를 낙찰받는 쪽이 더 이득이며 거기에 더하여 경쟁상대에게는 100만원의 손실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찰가는 상품가를 넘어서는 순간 잠깐 멈칫했다가도 손실확정에 대한 공포때문에 다시 상승하게 되며, 심지어 낙찰로 인한 이득보다 손실이 커진다 하더라도 경쟁상대에게 더 큰 손실을 강요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매는 계속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멈추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커지는 상태. 다른 경쟁자들이 감당을 못하여 모두 나가 떨어질 때야만 비로소 경매는 끝나게 된다. 그 결과 남은 건, 상처뿐인 승자와 완전히 거덜난 경쟁자-패자들 뿐.

이것은 치킨런의 머니게임버전이라 할 수 있으며, 포커의 베팅 레이즈와 유사하다.

설마, 실제로 이런 바보같은 일이 현실에서 존재하랴 의심되겠지만, 승자독식경쟁시장 메커니즘의 기본이다. 예를 들어 가격할인덤핑경쟁은 Entrapment Game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핵군비경쟁이라든가, 최다득표자 1인만 뽑는 소선거구제 선거전략이나,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의 연습생시스템도 Entrapment Game에 해당된다. 심지어 남녀사이의 연애과정에서의 밀고당기기 역시 이 게임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Entrapment Game에서 참가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일단, 게임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방법이 있다. 확실히 손해는 보지 않을 수 있으며, 만약 다른 참가자들간의 과열경쟁으로 인해 입찰가가 상품가를 넘어서면 모두가 손실을 입는 가운데 혼자서만 상대적인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게임 참가자가 적은 경우에는 입찰가가 상품가를 넘어서기 전에 다른 경쟁자들이 나가 떨어짐으로써 운좋은 승리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전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한가지 방법은, 참가자 모두가 단합을 하여, 최초 한명만 100원을 입찰 후, 다른 이들은 모두 입찰을 포기함으로써 100원에 낙찰받고 그 이익에 대해 모두가 나눠갖는 방법이 있겠다. 허나 이 방법 역시 배신으로 인한 독식에 대한 유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라고 하기에는 곤란하다.

Entrapment Game은 승자독식사회의 기본 모델이자 '보이지 않는 손' 운운의 자유주의 경제학의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가정에 대한 근본적인 급소찌르기라 하겠다.


승자독식사회 - 10점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권영경 외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