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4일 화요일

Entrapment Game

여기, 현금 100만원에 상당하는 매력적인 다이아몬드가 있다.

이 다이아몬드를 경매에 내놓고, 참가자들에게 입찰을 하도록 한다. 시작가격은 100원이며, 100원 단위로 순차입찰할 수 있고, 물론 최종적으로 단독입찰이 될 때까지 경매가 진행되며, 최고단독입찰자에게 다이아몬드가 낙찰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경매룰과 다를 게 없는데, Entrapment Game에서는 한가지 룰이 추가된다. 경매에 참여하는 모든 입찰자들은 자신의 최종 입찰가액을 반드시 주최측에 지불해야 한다. 즉, 내 최종 응찰액이 5000원이었다면, 경매가 끝난 후 반드시 주최측에 5000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경매에 참여하는 이들의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최선의 전략이 존재할 수 있을까?

최초 입찰자 A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나는 지금 이 경매에 최초로 입찰한다면, 100원의 예상손실로 100만원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이들이 응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반드시 나에게 낙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단계에서내가 잃을 손실은 겨우 100원뿐이다."

두번째 입찰자 B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내가 지금 이 경매에 입찰한다면, 200원의 예상손실로 100만원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이들이 응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반드시 나에게 낙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단계에서내가 잃을 손실은 겨우 200원뿐이다."

참가자들이 모두 상호경쟁자라면 이 경쟁은 더욱 강화된다. B의 생각을 더 들여다보자.
"게다가, 지금 내가 입찰하지 않는다면, A는 100원의 비용으로 100만원의 이익을 얻게 된다. 만약 내가 A보다 100원만 더 투자한다면, 100만원의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내가 더 높아지게 된다. 게다가 설령 A가 300원으로 재입찰하여 A가 낙찰받게 된다하더라도 최소한 A에게 200원의 추가손실을 강제시킬 수 있다."

이후, 계속적으로 C,D,E... 들의 생각도 마찬가지. 어찌되었건 경쟁자보다 100원만 더 투자하면 다른 경쟁자들에게는 손실을 강요하면서 혼자 모든 이익을 차지할 수 있다는 유혹은 매력적이면서 합리적으로 보이기때문이다.

이러한 경쟁은 계속 빠르게 진행되다가, 참가자가 2인이라면 50만원 근처에서, 그리고 참가자가 그 이상이라면 전체 입찰가 총액이 100만원의 합에 근접할 때 잠시 멈칫하게 된다. 즉 2인이 참여중이라면 한명이 499900원을 입찰했을 때, 또다른 한명이 50만원을 부르는 순간이다.

이 시점은 주최측이 경매참여자 전체와의 게임에서 승리를 확정짓는 순간이다. 이 다음 입찰부터 전체입찰총액은 경매상품의 가치를 넘어서게 되며, 경매참여자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경매참여자 집단전체의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인 결과가 되버린다. 만약 어떤 경매참가자가 이 게임의 원리를 깨닫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개인적 수준에서는 설령 999900원까지 가격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입찰가가 상품가를 초과하지 않는 한 낙찰을 받는 쪽이 더 이익이기 때문에 경매에 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미 기존에 입찰을 했었다면 경매포기는 그 시점에서의 손실액을 확정짓게 되므로 상당한 심리적 저항을 겪게 된다. (손실확정에 대한 공포는 주식투자에서 손절매시기를 놓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
게다가 입찰참가자가 많을 수록 이 순간은 더 빨리 도래하며, 예를 들어 입찰참가자가 141명 이상이라면 각자 겨우 1회씩의 입찰만으로도 주최측은 손익분기점을 넘게 된다. 최고 입찰자가 고작 14100원을 가벼운 마음으로 처음 비딩했을 뿐인데도.

두번째 특이점은 입찰가가 상품가에 근접하는 순간 발생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상품가를 넘어서는 입찰가는 없어야 한다. 합리적인 경매참가자라면 상품의 낙찰로 얻을 기회이익보다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Entrapment Game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법칙은 통하지 않는다. 만약 이 다이아몬드 경매에서 특정참가자 X가 100만원을 입찰했을 때, 999900원을 투자했으나 X때문에 낙찰을 받지 못한 이전 입찰자 Y로서는 999900원을 그대로 잃는 쪽보다는, 차라리 100원을 손해보더라도 1000100원에 다이아몬드를 낙찰받는 쪽이 더 이득이며 거기에 더하여 경쟁상대에게는 100만원의 손실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찰가는 상품가를 넘어서는 순간 잠깐 멈칫했다가도 손실확정에 대한 공포때문에 다시 상승하게 되며, 심지어 낙찰로 인한 이득보다 손실이 커진다 하더라도 경쟁상대에게 더 큰 손실을 강요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매는 계속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멈추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커지는 상태. 다른 경쟁자들이 감당을 못하여 모두 나가 떨어질 때야만 비로소 경매는 끝나게 된다. 그 결과 남은 건, 상처뿐인 승자와 완전히 거덜난 경쟁자-패자들 뿐.

이것은 치킨런의 머니게임버전이라 할 수 있으며, 포커의 베팅 레이즈와 유사하다.

설마, 실제로 이런 바보같은 일이 현실에서 존재하랴 의심되겠지만, 승자독식경쟁시장 메커니즘의 기본이다. 예를 들어 가격할인덤핑경쟁은 Entrapment Game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핵군비경쟁이라든가, 최다득표자 1인만 뽑는 소선거구제 선거전략이나,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의 연습생시스템도 Entrapment Game에 해당된다. 심지어 남녀사이의 연애과정에서의 밀고당기기 역시 이 게임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Entrapment Game에서 참가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일단, 게임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방법이 있다. 확실히 손해는 보지 않을 수 있으며, 만약 다른 참가자들간의 과열경쟁으로 인해 입찰가가 상품가를 넘어서면 모두가 손실을 입는 가운데 혼자서만 상대적인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게임 참가자가 적은 경우에는 입찰가가 상품가를 넘어서기 전에 다른 경쟁자들이 나가 떨어짐으로써 운좋은 승리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전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한가지 방법은, 참가자 모두가 단합을 하여, 최초 한명만 100원을 입찰 후, 다른 이들은 모두 입찰을 포기함으로써 100원에 낙찰받고 그 이익에 대해 모두가 나눠갖는 방법이 있겠다. 허나 이 방법 역시 배신으로 인한 독식에 대한 유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라고 하기에는 곤란하다.

Entrapment Game은 승자독식사회의 기본 모델이자 '보이지 않는 손' 운운의 자유주의 경제학의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가정에 대한 근본적인 급소찌르기라 하겠다.


승자독식사회 - 10점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권영경 외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댓글 2개:

  1. trackback from: 민노씨의 생각
    Entrapment Game (이바닥, 09.8.4) : '승자독식사회'(로버트 프랭크.필립 쿡)서평. "치킨런의 머니게임버전" "연애과정의 밀고당기기 역시.. http://bit.ly/EJP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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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rackback from: 서울비의 알림
    승자독식사회 & Entrapment Game — 이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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