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5일 화요일

나도 때려보자, 썩플.

과격한 제목으로 글을 시작하는 건 부담이다. :)
허나 요즘 유행하는 써플 때리기라는 신종 스포츠에 기꺼이 동참.

필립.K.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예언 당사자가 예언을 알게 되면서 어떻게 예언이 바뀌는지에 대해 나온다.
실험의 신뢰도를 높이는 기본조건중에 "이중맹검"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실험대상이 실험에 대해 몰라야 하며 동시에 실험자도 실험에 대해 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신약을 테스트할 때, 실험군과 대조군 환자모두 어느쪽이 신약을 받는지 스스로 몰라야 하며, 그 실험을 실시하는 시험자역시 어느쪽에 신약을 주었는지 실험이 종료될 때까지 몰라야 한다는 뜻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을 동시에 계측할 수 없다. 왜냐하면 관찰자의 관찰이라는 행위가 입자에 간섭을 주기 때문이다.

시시한 토막상식이다.

IT업계에 집단지성이라는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아아, 그 뜻은 좋은 거지.
문제는 그 구현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 신문사는 대문에 오르는 기사순서에 네티즌의 "추천"이라는 행위를 반영한다고 한다.
"오늘의 인기글"은 왠만한 커뮤니티 등에서는 빠지지 않는 코너이다.
검색사이트였는지 잊고 있었던 모 포털(이라고 숨겨봤자 뭐하겠는가. 네이트의 신 서비스 썩플에 대한 이야기이다.)에서는 검색순위에 네티즌의 "추천"을 이용한다고 한다.

인기글은, 뭐 크게 상관은 없겠다. 집단지성이라는 레테르를 붙이진 않았으니까.
신문사 기사게제순서야 어차피 편집자의 맘이니 그런 식으로 편집한다 해도 누가 뭐라겠는가.

그러나 검색사이트에서 로그인한 사용자의 추천?
세상 참 편하게 산다 싶다.

영화나 상품은 구매한 사용자의 충성도를 기대할 수 있다. 소비되는 가치가 아무려면 웹페이지 한장 보다는 크겠지. 영화보고 와서 영화사이트에 별점 매기는 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할 만 하다.

하지만 검색은 아니잖아?
포털들이 왜 덩치를 키웠는가? 검색과 색인으로 시작했던 포털들이 덩치를 키운건, 검색과 색인은 사용자들의 최종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즉, 검색과 색인은 최종목적지를 위한 중간단계였을 뿐 빨리 최종목적지로 보내줄 수록 좋은(?) 검색엔진이라는 딜레마 때문에 사용자를 붙잡아 두기 위해 덩치를 키운 것이다.
뭐, 반대로 더욱더 빨리 최종목적지로 보내버리겠다는 DON'TBEEVIL Google이 있긴 하지만.

드디어는 검색을 위해 로그인을 해줘야만 할 것 같은 검색서비스라... 멋지구리.

1. 대부분의 사용자는 로그인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에는 로그인하지 않는다.
2. 로그인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에 사용자가 로그인하는 것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이며, 대개 그 "의지"는 평상시의 자연스러움과는 달리 의도적인 강한 동인을 내포한다.
3. 그 "의도"는 필연적으로 평시의 자연스러운 정보의 흐름을 왜곡하려 한다.

결론 : 사용자의 "의식적 행위"에 기인하는 결과는 "집단지성"보다는 "집단감성"에 어울린다. 속되게 과장하자면 "빠돌-순문화"나 다름없다. 우리 오빠들이 1등 먹어야 해요. 기타는 XXX가 짱이지.

그럼 검색에 집단지성은 불가능한건가?
무슨 소리. 이미 Google이 처음부터 하던게 그거 아닌가. PageRank는 여러가지 고려사항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얼마나 많이 "참조"되었는가를 따진다. "참조"는 의지로 조절 가능한 것이 아니고, 또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기회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간단하게 클릭질 하나로 결정되는 순위보다는 훨씬 신뢰할 수 있다. 집단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나와야 집단지성이라는 과분한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아,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약방의 감초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겠지만, 그 놈의 한국적 특수성때문에 네이버 검색결과를 신뢰하지 못하잖아. 마치 어느 누구도 가판대 주간지에서 진실을 원하지는 않는 것처럼. 오로지 원하는 건 가쉽일 뿐. 가쉽검색에는 썩플이 최고입니다요.

네이버가 아닌 것이 천만다행. 그나마 네이트이니 그저 한번 씩 비웃어주고 끝날 수 있겠지만, 네이버였다면 벌써 클릭알바가 새로운 SEO 비즈니스 모델이 될 뻔하지 않았나.

차라리 검색순위를, "얼마나 Tong에 많이 클리핑되었는지", "얼마나 미니홈피에 많이 스크랩되었는지", "얼마나 egloos에 많이 링크되었는지" 를 계산해서 매긴다면 훨씬 객관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집단지성 아니겠는가. 애꿎게 클릭한번 더하게 만드는 피곤한 서비스가 과연 성공할 것인지 심히 궁금.

1. 집단사고는 과연 회자되는 만큼 가치가 있는가? 통찰력있는 소수의 사고보다 나은 가치를 줄 수 있는가?
2. 집단사고는 결국 소수의 영향력있는 오피니언 리더의 아이디어를 좀더 대중지향적인 모습으로 예쁘장하게 눈속임한 결과는 아닌가?
2-1. 집단의 사고가 근본적으로 오피니언 리더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는 한 엄밀한 의미의 집단사고라 부를 수 있는가?
2-2. 집단사고는 단순히 "집단 속에 속해있는 나"가 헤게모니를 획득했다는 착각과 자기만족을 주는 것뿐은 아닌가?
3. 집단사고는 그 방향성과 목표를 "evil"하지 않게 유지할 수 있는가? 혹은 컨트롤할 수 있는가?
3-1. 컨트롤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집단사고라는 근본과 모순되는 것은 아닌가?
4. 집단사고가 철저하게 기층단위를 기반으로 작동하게 하려면 무엇을 전제로 해야하는가?
5. 이러한 모든 과정을 거쳐 집단사고가 긍정적으로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가치에 부합한다는 보장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실현방법과 보장이유는?
5-1. 그렇지 않다면 나와 유리된 집단사고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6. 왜 그럴까? "나"를 제외한 집단사고가 "나"에게도 가치있을거라는 착각이 만연해있는 이유는?
7. 그렇다면 차라리 철저한 "나-중심"의 사고의 "집합-필터링"이 오히려 집단사고의 근본적인 의의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From : 옛날블로그 : Group Think, Group Intelligence

아직 더 때릴 것이 남았는데,
이른바 릴레이서플이라면서 프레임링크를 걸어버린다.
예:http://searchplus.nate.com/searchplus/relay.plus?ud=1&query=naver&coll=dir_site&s=1&forbid=&mid=dirSite1
이런 건 naver에서 소송안거나? :)
이는 엄연히 저작권을 침해하는 프레임링크라고.
하긴, 네이버 역시 비슷하게 프레임링크를 이용하는 서비스가 있으니 뭐라 할 말도 없겠지.
웃기는 것은, 죄다 이렇게 프레임링크를 걸었으면서, "웹뉴스"검색결과에는 빠져있다. 왜냐고? 온신협에서 프레임링크는 고소대상이니까.
즉, 뭔 말인가 하니, 저작권 침해로 고소당할까봐 신문사 검색결과에는 붙일 수 없는 프레임링크를 다른 곳에는 맘껏 쓰고 있다는 소리. 이참에 고소해버릴까? (아쉽게도 이 사이트는 검색결과에 나오지 않네... 마이너블로거의 서러움. 아쉽.)

웹 2.0이라면서 요즘 프레임링크를 맘껏(?) 사용하는 서비스들이 늘고 있다. 글쎄.. 물론 저작권법이 현실적으로 바뀌어야겠지만, 어쨌거나 현재 불법(?)인 프레임링크를 이렇게 막 써도 되는건가? 나름 저작권에 민감한 사용자들도 이 건에는 별 불만 없는 건가?

내친 김에 하나만 더 때리자.
"디렉토리/사이트 분류"의 "네이버"와 "웹페이지 분류"의 "네이버"는 별개의 항목으로, 플러즌이나 플러스도 따로 관리된다. 뭐, 개념상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용자들은 과연 두 가지를 서로 다른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하나는 25플러즌, 또 하나는 2플러즌. "daum"으로 검색해보면 각각 20플러즌과 4플러즌이다. 나는 도대체 여기에 어떤 집단지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집단바보놀이만 가득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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