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6일 월요일

학습지 마케팅

1. 굴지의 베스트셀러 A사 - "특목고 입시라면 이 한권으로."
2. 만년 2위 B사 - "모든 학생을 위한... 이지만 사실 특목고 입시에도 도움이 된다고도..."
3. 니치시장에만 집중 C사 - "실업고는 학교가 아닌가? 공부못하는 게 죄는 아니다!"
4. 대안교육을 외치는 D사 - "고입경쟁을 거부하는 이들을 위한 대안학습지"
5. 'wannabe A' E사 - "A사의 학습방법은 정통 특목고 대비가 아님."

A사는 솔직하다. 까놓고 특목고 들어가려면 자기네 학습지를 선택하라고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그 좁은 특목고 시장만 놓고 마케팅을 하는데 어떻게 1위가 될까 싶지만, 모든 학부모는 자기 자식이 특목고를 갈 수 있든 없든 A사의 학습지를 선택하게 된다. 1차적으로 욕망을 자극하고, 2차적으로 그렇게 획득된 권위를 재활용한다. 부동의 1위인 이유.

B사는 엉거주춤하다. 상식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A사의 특목고 중심 마케팅과 대비하여 모든 학생을 위한다는 기치를 건다. 한때는 재미도 보았다. 특목고 입시 비리 등으로 과열경쟁에 염증을 낸 학부모들 덕에 한동안 1위자리를 A사로부터 빼앗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B사의 학습지 내용은 A사랑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출판사명을 여러번 바꾸었고 그 때마다 이전 책과는 다르다고 광고도 했지만 결국 그게 그것인데다,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자사의 이전책을 까대는 걸로 절반을 채운다. 엉거주춤하게 전체를 위한다면서 특목고 대비도 가능하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겉으로는 특목고 입시에 반대한다는 명분하에 B사의 책을 사면서도 속으로는 자기 자식들이 이 책으로 특목고를 갈 수 있기를 바란다.

C사는 기반만은 탄탄하다. 어찌 되었건 실업계를 가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습지만 만든다. 특목고는 포기한 학부모들만 구입한다. 당연히 더이상의 시장확대는 불가능하다. 고등학교는 특목고와 실업고만 있는 것은 아닌데도, 이들은 일반계 고교가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D사는 이상적이다. 특목고뿐만이 아니라 모든 중고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한단다. 학습지 내용은 알차고, 흥미로우며, 심지어 효과적인 교육법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책으로 공부해서는 특목고에 진학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특목고라는 존재를 부인하며, 특목고 없는 세상을 위한 대안교육을 부르짖는다. 그래서 모두들 D사의 학습지 내용이 가장 좋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무도 구입하지 않는다.

E사는 A사의 경쟁자는 B가 아닌 자기들이라고 말한다. A와의 선명성 경쟁으로 시장구도를 이끌어 가려고 한다. A의 문제지에 오타가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A사 출신 강사들이 나와서 차린 회사이기 때문에 나름 골수팬들이 있기는 하다.


A사를 제외한 모든 회사들의 마케팅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모두들 A사가 어떤 책을 내는지...만 쳐다보고 그에 대한 대응을 한다는 점.
B사는 무조건 A사의 문제지 출제 경향이 틀렸다고 외치고, C사는 A,B 둘 다 틀렸다고 말하며, D사는 아예 판을 새로 바꾸자고 말하고, E사는 A사의 문제지 일부의 수준이 떨어진다 말한다. 결국 A사가 먼저 움직여야만 뒤늦게 대응하는 꼴이라서, 학부모들의 뇌리에는 A사가 점점 더 각인될 뿐.
그나마 D사는 가끔 새로운 어젠더를 제시하긴 하지만 워낙 사보는 학부모가 없고 광고에도 돈을 안쓰는지라(광고에 돈쓰는 거 싫어함.) 듣보잡취급 당하기 일쑤.

애초에 교육시장이 특목고-명문대-취업란의 삼중크리로 구조화된 시스템인 마당에 A사의 마케팅 포인트는 핵심을 제대로 잡고 있다 할 수 있다. 이 구조를 타파하지 않고는 B,C,D에게는 아무런 비전이 안보이는 상황. 아예 판을 갈아엎자는 D를 제외하고는 B,C는 현상유지에만 급급하거나, 혹은 현상유지만이 목표. B는 1위는 하고 싶지만 구조를 뒤엎고 싶지는 않은 욕심쟁이일뿐이고, C는 자신의 고정고객을 포기할 생각은 없는 소심쟁이일 뿐. D는 초가난뱅이 듣보잡이니까 논외. 그 덕에 시장은 A사가 선점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고착화되는 상황.


결론...
다섯개 사가 모두 상장되어 있다는 가정하에, 주식구성 포트폴리오는 A : 70%, E : 15%, B : 15% 추천.
작전세력을 동원한다면 D에 올인해도 좋겠으나, 동원되어야할 금액이 흠좀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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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게 지금 뭐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아시죠?

댓글 2개:

  1. 각 출판사 사장들의 협회장 선출에서도 포스팅 하신 것과 똑같은 이유로 A사가 대승을 거두었죠.

    B사는 무조건 A사 까기에 급급했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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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만...

    마지막 한 줄이요, 제가 과문해서...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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