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일 월요일

서재에 책이 많은 것을 정당화하는 방법

우리집에는 책이 많다.  집안에 들어서면 책밖에 안보인다.
하긴 가진게 책밖에 없음니까 당연한 얘기다. 우리집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집안에 들어서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와 책이 정말 많군요! 이 많은것을 다 읽으셨나요?
처음엔 그런 반응이 책을 별로 접하지 않은 사람들, 큰 책꽂이는 본적이 없고 그저 추리소설 너댓 권과 세 권짜리 어린이용 백과 사전이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책꽂이만 보아 온 사람들의 특성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차례의 경험을 통해서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자들 중에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장서를 연구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이미 읽은 책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를 다 설명할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누구나 많을 책들을 마주하게 되면 지식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그래서 무심결에 그런 질문으로 자기 자신의 고뇌와 회한을 표현하는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서두에서 말한 농담으로 들었을때와는 달리 반드시 대꾸를 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
ㅡ 에코, 넌 언제나 대답하는 사람이로구나 ㅡ
라고 놀릴때는 가볍게 미소짓거나  
ㅡ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네요 ㅡ
라는 식으로 대꾸함으로써 궁지를 벗어날수 있지만
ㅡ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어요? ㅡ
라고 물어올땐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턱뼈가 뻣뻣해지고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예전에 내가 선택한 대답은 상대를 경멸하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아니요, 저  가운데 읽은 책은 단 한권도 없어요. 이미 읽은책을 무엇하러 여기에 놔 두겠어요?
하지만 그런식의 대답은 위험하다.상대의 맹한 반응을 촉발시켜 하나마나 한 소리를 또 지껄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 그러세요! 그럼 다 읽은 책을 어디 두세요?
어쩌면 로베르또 레이디가 생각해 낸 대답이 최선책일지도 모른다.
저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지요. 여기 있는것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을 말입니다.
이런 대답을 들으면 상대는 아연실색하며 경외의 눈초리로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그렇지만 그런 무자비한 대답으로 상대를 불안에 빠뜨리는 건 너무 심하다느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에 나는 누가  
ㅡ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어요? ㅡ
라고 물으면 이런식으로 대답하고 만다.  
- 아니오, 여기 있는 이 책들은 지금부터 다음 달까지 읽어야 할 것들입니다. 다른 책들은  대학의 연구실에 놓아두지요.
한편으로는 하나마나한 소리가 이어지는 것을 막기위한 고도의 인간 공학적 전략을 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문객으로 하여금 작별을 서두르게 하는 효과를 지닌 대답이 아닐까?

:: 움베르토 에코 "서재에 책이 많은 것을 정당화하는 방법" 중...

댓글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