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6일 일요일

집단지성 삥뜯기를 삥뜯기 - 추천의 허상

누가 처음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집단지성이란 삥뜯기"라는 말이 있었다. 말하자면, 집단지성이라는 포장하에 서비스주체가 사용자들의 노동력이라든가, 혹은 알고리즘을 공짜로 착취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사실 이러한 착취는 서비스 주체와 사용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사용자와 사용자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예컨데, 블로그 글쓰기를 보자.
초기에 블로고스피어가 작았던 그 때에는, 누구든 조금만 열심히 블로깅을 해서 양질의 컨텐트를 생산해내기만 한다면 블로고스피어에서 주목받으며 꽤 쏠쏠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블로깅으로 취직을 하고, 어떤 이는 블로깅으로 명성을 얻고. 물론 그런 직접적인 이익외에도 자기만족이라든가 친목등의 비계량적인 이익도 포함해서. 그 결과 블로고스피어는 양질의 컨텐트를 얻기 위한 좋은 플랫폼이었다. 이렇게 착실히 블로깅을 하는 블로거를 '착한 블로거'라고 부르도록 하자. 이들은 블로깅을 위해 시간과 노력이라는 리소스를 투입하고 타인의 '관심'이라는 재화 - 그리고 그에 기반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블로고스피어가 확장되면 될 수록 착한 블로거가 이전만큼의 이익을 얻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노력량은 점점 늘어만 간다. 관심사가 다양해지고, 경쟁자가 늘어나게 되면서 더 자주, 더 좋은 블로깅을 해야만 하게 된다. 투입되는 리소스 대 돌아오는 이익비가 나빠지기 시작한다.

이 단계가 되면 '나쁜 블로거'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착함', '나쁨'이 태생적인 도덕의 문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 착한 블로거가 나쁜 블로거가 되기도 하고, 나쁜 블로거가 착한 블로거가 되기도 한다.
착한 블로거란, 자신의 리소스 투입을 최대화하여 얻는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전략을 말하고, 나쁜 블로거란, 자신의 리소스 투입은 최소화하면서 얻는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전략을 말한다고 하자. 어느쪽이 더 효과적인 전략인지는, 환경안에 각각의 비율이 어느 정도로 분포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초기에는 착한 블로거 전략이 효과적이었지만, 점점 블로고스피어가 커지면서 착한 블로거 전략의 효율성이 떨어지면, 나쁜 블로거 전략이 매력적이 된다.
어차피 왠만큼 착하게 블로깅을 해봤자 이제는 명성을 얻거나 주목받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나쁜 블로거들은 좋은 컨텐트를 생산하는 대신, 좋은 컨텐트를 소비하는 것을 행동전략으로 삼는다. 어차피 파워블로거가 될 수 없다면 굳이 그들을 따라잡으려 경쟁하는 대신 그들이 컨텐트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함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물론 블로고스피어에 나쁜 블로거들이 너무 많아진다면, 상대적으로 양질의 컨텐트(를 발견하기)가 부족해지기 때문에 컨텐트의 가치가 높아짐으로써 양질의 컨텐트를 생산해내는 착한 블로거들의 가치가 더 높아지게 되어 다시 착한 블로거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러면 착한 블로거의 수가 블로고스피어내에서 다시 증가하게 된다.
완전 경쟁상황이라면 이 상황은 시소처럼 흔들리다가 일정 비율(투입량과 이익량의 가치평가에 따라 결정됨)에서 착한 블로거 대 나쁜 블로거의 비율이 안정화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러한 안정화 비율을 흔드는 여러 변수가 있는데, 그 중 영향력이 큰 것 중 하나는 바로 메타블로그의 존재 및 추천제도이다.

추천제도는 고안자들의 취지와는 다르고 우리의 기대와는 반대로, 컨텐트 가치의 왜곡현상을 만들게 한다. 착한 블로거 중 아주 극소수에게만 컨텐트 가치를 높여줌으로써, 다른 착한 블로거들에게 돌아올 이익을 일부에게 몰아주는 현상을 발생시킨다.
이로 인해 파워블로거가 아닌 착한 블로거 전체의 이익은 감소하게 되고 그 결과로 나쁜 블로거 전략이 더 매력적인 상황이 된다.
그런 상황이 될 수록 더욱 더 양질의 컨텐트 가치는 더 올라가게 되고, 메타블로그의 추천제가 아니었다면 다른 착한 블로그들도 나누어 누렸을 가치상승의 혜택이 파워블로그에 집중되는 악순환의 피드백루프가 강화되기 마련이다.

추천제도는 나쁜 블로거들의 전략에도 변화를 주게 되는데, 바로, '추천을 안하기'가 꽤 효과적인 경쟁전략이 된다는 것이다. 추천이라는 행위에 비용(로그인, 클릭, 고민...)이 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좋은 컨텐트를 소비하는 것'으로 이익을 얻는 경쟁자들을 배제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추천'에 대한 비용은 착한 블로거들 혹은 아무 생각없는 블로거들이 지불할 것이기 때문에, 나쁜 블로거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은 '추천 안하기'가 되는 것이다. (비근한 전략으로는 '논쟁으로 발전시키지 않고 무시하여 묻히게 하기'같은 것도 있겠다.)

그 결과, 블로고스피어가 커지면 커질 수록, 메타블로그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 수록, 추천제도를 강화하면 강화할 수록, 전체 블로고스피어에서 양질의 컨텐트를 생산해내는 착한 블로그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딜레마? 자기모순?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가장 그럴듯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악용되는 제도가 사용자에 의한 사용자에 대한 추천 제도랄까.

대안이 있다면, 추천이라는 의도적 행위대신 스크랩이나 북마크등의 행위의 결과를 통한 가치측정을 행하는 방법이라든가, 당장 메타블로그에서 순위를 계측하는 행위등을 없애는 것 정도? 또는 신뢰할 수 있는 패널을 통한 블로그 평가라든가.
하긴 나는 모든이에게 다 해당되는 평가기준이 존재하리라는 환상따위는 없을 뿐더러 애초에 그러한 평가가 불필요하고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으니 내가 대안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

물론 그러면 착한 블로그에 대한 동기부여가 떨어지지 않겠냐 하겠지만, 애초에 그들이 Top 100에 들기 위해 블로깅을 하는 것은 아니었잖나?


ps. 그동안 '나쁜 블로거' 전략을 취하고 있었는데, 본의아니게 반강제적으로 요즘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사람들이 많이 보는 블로그도 아닌데.

댓글 4개:

  1. 안녕하세요. 항상 보는 1인입니다 ^^;

    글 읽다가 생각이 났는데, delicious에서 북마크된 횟수를 카운팅해서 평가에 반영하는 것도 괜찮을 것같습니다. 그냥 문득... ^^;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합니다. 그 옛날 '블로그의 도'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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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가린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블로그라는 것이 정말 많이 커졌네요.



    동호회 횔동도 하고 있는데, 추천제도가 참 재밌어요.

    몰아주기, 뺏기 등등...



    그런 걸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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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너바나나님의 블로그에 걸린 북마크를 통해 방문했습니다.

    절실히 공감하고 있는 얘기입니다.

    올해는 의미있는 연결망들이 더욱 촘촘히 짜여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삥뜯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요.

    저도 북마크해둡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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